2. 가인과 아벨
2. 가인과 아벨
(1) 가인과 아벨의 출생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득남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이쉬』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고, 아담의 한편(반쪽의 틀)을 이끌어내시고, 남은 반쪽이『이쉬』다. 여호와로 인하여 남겨진『이쉬』를 얻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았다가 아니라, 남자를 얻었다 라는 것이다. 이『이쉬』에 대해서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아담에게서 반쪽(이쉬)을 빼낸 남자는 아담(그리스도의 표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남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남자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남자(그리스도)가 여자(하나님을 떠난 영들)와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여기서『말미암아』 라는 말은 『~께로 부터』라는 의미다. 즉『여호와 함께 있는 자들로 부터』라는 의미다. 여호와와 함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천사를 의미한다. 그래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이 영으로서 육체 속에 들어가, 득남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 온 것이다. 하와가 여호와로 인하여 남겨진『이쉬』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 이쉬가 바로 가인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2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그가 바로 가인이다. 근원된 땅을 가는 자가 된다.
가인이라는 말은 소유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왓(그리고)토메르(말했다) 카니티(소유했다) 이스(남자) 에트(~와 함께 전치사) 야훼』 하와가 여호와를 소유했다는 말이다. 이는 창세기 3장 15절(약속의 씨)과 연관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하와가 가인을 낳자 말자 여호와 엘로힘이 약속한 여자의 후손 즉 그 아들이 메시아인줄로 알았다는 것이다. 가인의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남자(인자)를 소유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인은 농사를 지었다고 표현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씨뿌리는 비유가 있는 것이다. 즉 마음 밭을 가는 것이다.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 밭을 가는 자가 바로 가인이라는 것이다. 하와는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으로 들어온 자의 대표격이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인류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된다. 가인도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으로 들어오는 모든 영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마음의 밭을 갈아서 왜 이 땅에 왔는지를 깨달아야 했다. 가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다.
(2) 가인과 아벨의 제사
가인은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상징하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나타낸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다. 땅의 것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뱀(사탄)의 자식인 것이다.『세월이 지난 후에』미캐츠(기본형 캐츠מִקֵּ֣ץ)는 끝(종말)이라는 의미이다. 종말은 심판을 의미한다.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미프리 아다마) 열매는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와 생명나무가 있다. 가인이 드린 열매는 자기가 내 놓는 열매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인 것이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알리라”라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세월이 지난 후에』이 말은 가인은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오신 그 때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동물만 드린 것이 아니고, 곡식도 드렸다. 그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이제는 의롭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의에 사로 잡혀 있는 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속에 생명나무가 감추어져 있다. 율법 속에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도저히 스스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여인의 후손인 약속의 씨를 바라볼 수 밖에 없음을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만 하는데,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자는 죽어야 하는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인, 즉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자기의 의를 나타내므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 없이도,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로운 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다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돌아오라는 것인데, 아무도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인 즉 이 세상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토지를 경작하는 가인과 같은 그런 존재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첫 새끼는 장자다. 장자 역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시편 89편 27절에서『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로마서 8장 29절에서『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그리고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첫새끼를 드렸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이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브리서 9장 26절에서도『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세상 끝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기름과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먹지 말라고 하시고, 기름은 태워서, 피는 땅에 흘려서 보내라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다른 생명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레위기 3장 17절에서『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위기 7장 11장 22-25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다른 데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는 말지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인간들이 먹어야 할 생명은 다른 생명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생명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하늘의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살과 피를 드리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를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산 제물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런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드리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희생, 봉사, 재물 등 이 세상에서의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드리는 것이다. 곧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나를 드리는 것이다.『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이 말은 물질을 구분해서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온 영을 다시 하나님께로 드린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을 드린다는 의미다.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온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나를 드린다는 의미도 모르는 것이다.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제물은 이스라엘이 버린 과부, 귀신들린 자, 맹인, 죄인들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셨다. 가인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는 자기의 의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드리는 자의 제물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지 않으신다. 그 생각 속에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탐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3)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못하겠느냐
테티브(기본형:야타브)를 “선을 행하다” 라고 번역했는데, 네가 잘했다면 이라는 의미다. 네가 잘했다면 너의 제물을 받지 않았겠느냐 라는 말이다. 로 테티브도 “네가 선을 행치않으면” 이라고 번역했는데, 네가 잘 하지 않으면 이다. 잘한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예배와 제사에 있는 것이다. 예배는 영과 진리로 자신을 영적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야타브의 의미는 제물을 올바로 바치다 라는 의미(칠십인역)다. 로베츠는 엎드리다 라고 되어있는데, 엎드린다는 것은 싸우려고 하는 것을 나타낸다. 문은 하나님께 들어가는 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문 앞에서 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죄인 것이다. 4장 7절은 하나님이 가인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신다. 죄는 진리(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는 자는 결국 죄인이라는 말이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를 나타내는 가인,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인과 같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자기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근신하라 깨어있으라는 말은 상황을 잘 분별하라는 것이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를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워에레카(네게 있으나) 테슈카토(소원, 갈망은) 워앝타(너는) 팀살(다스릴지니라) 보(그것을)』이다. 테슈카는 사모함 갈망을 의미한다. 너에게 갈망은 있으나 너는 그것을 다스리라 라는 것이다. 갈망이라는 히브리어 테슈카는 헬라어 에피튜미아(탐심 욕심)와 같은 의미다. 에피와 티모스의 합성어이다. 티모스는 희생제사를 드리는 마음을 나타낸다. 십자가의 죽음 없는 제사는 탐심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제사는 자기의 이익을 위한 마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가인은 제사를 드리려는 욕망을 가진 자였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는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온 자들은 모두 죽어야 할 그런 자들인데, 하나님께 그런 탐심(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죽는 마음의 제사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사가 될 뿐인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는 자는 살인하는 와 같은 것이다. 이런 자가 예수를 십자가에서 못박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욕망을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워앝타(너는) 팀살(다스릴지니라) 보(그것 을)』팀샬의 기본형은 마샬이다. 창세기 1장 18절에서『낮과 밤을 주관하게 (마샬)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밤과 낮을 주관하는 주체는 해, 달이다. 달은 율법을 상징하지만, 해는 복음을 의미한다. 율법과 복음을 통해서 다스리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창세기 3장 16절에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여기에 다스리는 것이 팀샬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다. 남편은 그리스도, 아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상징한다.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제물은 이스라엘이 버린 과부, 귀신들린 자, 맹인, 죄인들이었다. 이들은 이방인취급을 받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셨다. 가인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처럼 인간이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는 자기의 의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드리는 자의 제물을 받으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은 바로 탕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그것이다. 이스라엘이 버린 과부, 귀신들린 자, 맹인, 죄인들이 바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탕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영접하신다. 그러나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말은 내가 율법을 통해서 나를 지켜 의로워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받지 않으신다. 즉 가인의 예물을 받지 않으셨다.
『가인이 안색이 변했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에 대해서 분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분개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한 것이다. 아마도 가인의 안색보다도 더 심하게 분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를 한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14절에서『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26장 4절에서『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그 외에도 여러 군데 이런 표현들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신다.『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내가 시키는 대로 너가 행하면 되는데, 엉뚱하게 행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켜행하면, 죄를 지어도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자를 받지 않으신다.
신명기 5장 21절에서『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지만, 이렇게 탐욕을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으면, 인간 속에 탐심이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탐심이 있는 자들이라고 알려주신다. 그 탐심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그 마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임을 깨달아야만 했는데,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 선을 행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히 따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가 된다. 그런데, 백성들은 열심히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스스로 의를 이룬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이 악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로마서 3장 19-20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이『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원어에는 낯이라는 말이 없다.『네가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다.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난 자요,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요,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자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말씀하신 대부분은 자기의 의를 버리고,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고, 정말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이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죄인들은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함이었다. 그런데, 율법을 행하여 의를 이루려고 하므로,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을 행하지 않는 자가 되어 죄가 있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셨는데, 백성들은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가 없다 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이『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했는데, 가인은 죄인임을 깨닫기는커녕, 아벨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다. 탐심은 우상숭배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나의 의를 지키려고 하므로 우상인 것이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자기의 의를 내려고 하는 모든 하나님을 떠난 자는 사망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4)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죄벌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죄악, 불법이라는 의미다. 내 죄악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다는 말이다. 즉 내 스스로 죄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율법을 지키다가 죄를 깨닫고 도저히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부르짖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이 주어진다. 은혜의 손길은 그리스도이시다. 그에게 그리스도가 찾아가시는 것이다. 시편 65편 3절에서『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예레미야 33장 8절에서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가인으로 표현되는 모든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려고 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을 떠난 자이며, 유리하는 자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흙인 육체에 들어와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이와 같이 가인의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자들이며, 결국 유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다 이와 같이 가인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도 자기 중심이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가 회개한다. 중요한 것은 날마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회개가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러한 회개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가인이 스스로 잘못된 것임을 고백하고 사람들에게 자기의 상태를 말하면 사람들은 다 죽이려 할 것이다. 교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야,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나를 포기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공격할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예수의 구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하면, 그들은 가인과 같은 자를 죽일 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율법 속에 있는 가인은 죽어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이 어떠한가를 깨닫는 가인은 하나님이 찾아가서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다. 죄를 사해주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그 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예수님이 유대땅에서 태어나시고 주로 창기 세리 죄인들과 함께 다니셨다. 바리새인들은 이를 두고 비난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을 비난하는 자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의 죄가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가인과 같은 영적 살인자들인데,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다.
표(오트)에 대해서, 창세기 9장 12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9장 14-15절에서『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오트는 증거 또는 언약의 표시를 의미한다. 출애굽기 3장 12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요한복음 6장 2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헬라어:세메이온)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세메이온이 히브리어로 오트이다. 요한복음 6장 32-33절에서는『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오트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의 약속인 것이다.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부르짖는 가인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주시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부르짖지 않는 자에게는 오트는 심판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의 의를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지 못하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가인을 죽이는 자는 가인의 방법으로 살인하는 자라는 의미다. 일곱은 언약 맹세라는 의미다. 일곱배 벌을 받는다 라는 말은 언약을 통해서 받는 저주(보복)를 담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진노의 포도주라고 했는데, 진노는 하나님의 일하심(보복)이다. 가인을 통해서 가인과 같은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죽이면 생명의 양식이 된다. 그러나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살인자 가인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주어지는 것이다.
가인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부인하는 것이 곧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이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자를 말한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는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는 자는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은 육체의 죽음외에 심판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자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심판을 받은 것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백보좌 심판때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가인을 죽이는(하라그)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나카흐)을 면하게 하시니라』하라그는 창세기 4장 8절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동사이다. 사람에 의한 폭력적인 살인에 등장한다. 나카흐는 하나님에 의해서 치시는 죽임을 의미한다. 심판을 의미한다. 개역개정을 볼 때는 가인이 죽임을 면하는 것을 여겨진다. 그러나 그를 만나는 자를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죽임)을 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הַכֹּות־אֹתֹ֖ו כָּל־מֹצְאֹֽו 『하코트(죽임을) 오토(그가) 콜(~누구를) 모츠오(만나는)』이 부분을 다시 번역해 보면, 『그를 만나는 누구든지 죽임을 면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가인이 표를 가지고 있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가인이 표(언약)을 가지고 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살인자였지만,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구원의 표(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표를 가지고 있는 가인(회개하여 돌이킨)을 만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6)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가인의 입장에서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모습이다. 일곱배라는 말은 일곱은 언약 맹세라는 의미다. 일곱배 벌을 받는다 라는 말은 언약을 통해서 받는 저주(보복)를 담고 있다. 가인을 통해서 가인과 같은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죽이면 생명의 양식이 된다. 그러나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살인자 가인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주어지는 것이다. 라멕도 이와 같이 간구하고 있다. 70은 7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수로서, 언약의 중표로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죄의 용서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벌이 칠배라고 하는데, 벌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원수갚는 것(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사탄에게 원수갚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32장 35절에서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로마서 12장 19절에서『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모든 것의 원수는 사탄이다.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칠배에서 배라는 말은 원어에 없고, 칠이다. 칠은 안식을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될 것이다. 라멕을 위하여는 칠십칩배라고 했다. 배라는 말은 없고, 칠십칠이라는 말이다. 즉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모든 구원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1-3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과 하나님을 떠난 자가 이 세상에 들어왔는데, 창세기 4장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영들이 구원을 이루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유리하고 방황하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돌이키는 자를 불러주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7) 가인의 계보
창세기 4장 16-24절에서『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열국에 흩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놋이라는 말은 방랑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열국으로 흩어져 나그네로 살게될 것이라는 의미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게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신 말씀이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우상을 섬기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열국에 흩어지게 될 것인데, 그래도 하나님이 다시 모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거든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랑자의 삶을 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돌이키면,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말씀이다.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이럇은『도망자』라는 의미를 갖고, 므후야엘은『하나님의 치심』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치심을 받고 도망다니는 민족이 되었다 라는 의미다.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므드사엘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치심으로 열국에 흩어져 디아스포라로 살아가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라멕은 『강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강한 자라는 것이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조상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버지라는 의미다. 육체적인 조상이라기 보다, 기능적 대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음악의 아버지를 바하라고 말한다)
『야발』이라는 의미는 개울(시내)라는 의미이고, 목축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당시의 목축업은 부자의 상징이었다. 유대인들이 세계경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유발은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역시 세계 예능계에 영향을 끼친다.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유대인들은 세계 과학기술에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은 창세기 4장 16-24절에서 유대인들이 비록 디아스포라로 세계에 흩어져 있지만,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것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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