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열두명의 사사들

 

11. 열두명의 사사들

 

(1) 옷니엘 

 

①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메소포타미아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암을 8년 동안 섬겼더니(3:7)  

 하나님은 구산 리사다임을 통하여 징벌을 내렸다. 송형철에 의하면, 구산 리사다임에 대해서 여러 주장이 있다. 첫째, 구산 리사다임의 뜻은 구스에서 온 악한 자라고 번역한다. 구스의 자손은 이란 서북부에 산재한 후지스탄 족과 관계된다. 둘째, 구산 리사다임은 “배나 악한 자”라는 뜻으로 시리아 북부 유비라데와 카보라스강 유역의 아람-나하라임으로 칭했고, 그 곳의 왕으로 본다. 

 

②하나님의 구원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이기더라”(3:10) 그리고 40년간 평화가 있었다고 전한다. 옷니엘은 여호와의 능력에 의해서 싸웠고, 이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옷니엘은 여호수아 시대의 인물로서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이다. 그는 기럇세벨을 쳐서 정복한 일로 갈렙의 사위가 되었다. 여기에서 옷니엘이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한 전투의 전략에 대해서는 소개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수없이 많은 전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쓰신 것으로 생각된다.  

  

(2) 에훗 

 

①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3:12) 무슨 악을 행하였는지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으나, 우상을 섬겼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을 이용하셨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을 규합하여 이스라엘을 치고, 성읍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18년을 모압 왕에게 섬겼다. 

 

②하나님의 구원 

 에훗이 한 규빗되는 칼을 허벅지 옷 속에 감추고 왕에게 공물을 바치러 들어갔다. 이 상황을 보면 분명 에훗은 피지배의 이스라엘의 대표격인 지도자로 생각이 된다. 총독쯤 될 것이다. 공물을 바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를 보내고, 자기는 길갈 근처에서 다시 궁으로 돌아와 왕을 알현하도록 했다. 공물을 바침으로서 왕의 긴장을 풀게했던 것이다. 그리고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라고 하면서 왕에게 아뢰니 왕은 보좌관들을 모두 물리게 하였다.  

 에훗의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왕은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에훗이 들어가니 왕이 좌석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왼손으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찔러 죽였던 것이다. 왼손잡이였다. 왼손으로 칼을 빼니 왕은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오른손으로 칼을 빼면 순간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데, 하필 왼손이였기 때문에 상황에 대처를 하지 못했다. 칼이 그의 등 뒤까지 나왔다고 하니 왕은 전혀 저항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에훗은 현관문에 나와서 다락문을 뒤에서 잠그고, 나가버렸다. 신하들은 다락문이 잠겨있으므로 평소처럼 서늘한 방에서 있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나오지 않자 그때서야 다락문을 열어보니 군주가 죽어있었던 것이다. 상황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리고 에훗은 나팔을 불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군을 재정비하여 공격하여 패퇴시켜 버린다. 이후 80년 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하나님은 강력한 군주에 대해서는 바로 전쟁을 하는 것보다 핵심적인 군주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고, 특히 군주를 없앨 때는 왼손잡이를 이용하신 것을 보면 그때 그때마다의 상황 전술을 이해할 수 있다.  

 

(3) 삼갈 

 

 삼갈에 대한 내용은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사람 600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고 한다. 5장의 드보라의 노래에서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이 오솔길로 다녔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5:6-7)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대로가 비었고, 사람들이 오솔길로 다닌다는 것은 아마도 전쟁으로 인해 무섭고 두려워서 숨어 다녔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그쳤다는 말은 전쟁 등으로 사람들이 마을에서 모이기를 두려워했으므로 집밖으로 나오지 않던가 혹은 산속에 숨어 도망다녔던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스라엘 전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인 지도체제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붕괴된 이스라엘의 상황 속에서 잘 훈련된 옷니엘과 총독쯤되는 지도자격인 에훗과 같은 사람을 쓰지 않으셨다. 그렇게 할 만한 사회적 여건이 되지 않음을 보시고, 평범한 농부를 이용하셨던 것이다. 그 당시 사회가 붕괴되어도 농사 짓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삼갈은 농부였음에 틀림없다. 소모는 막대기는 농부를 암시한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전략은 평범한 농부를 쓰시고 그를 통해서 무려 600명을 죽이니 농민들의 기세가 올랐을 것이다. 농민이 주도가 되어 전쟁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삼갈은 블레셋사람 600명을 막대기로 죽이고 다른 농부들과 규합하여 블레셋 사람들과 일전을 치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 소문이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을 합쳐 삼갈을 중심으로 블레셋 사람을 몰아내었을 것이다. 이때는 에훗이 죽지 않았으므로 에훗도 군대를 다시 재 정비하는데 큰 힘을 주었을 것이다.  

 

(4) 드보라 

 

①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매”(4:1) 하나님의 전에서 악을 행하는 것은 우상숭배 일 것이다. 하나님의 전에 우상을 갖다놓고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하며 섬겼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면서도 계속 우상을 섬겼을까? 궁금해진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때문 일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하나님을 본 자가 새로운 세대에는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 아론의 우상처럼 생각한 자도 있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이다. 적당히 예물만 바치면 그저 축복해 주는 우상은 그들에게 정말 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마음의 감응을 받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우상을 집으로까지 가져가서 신당을 차리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님은 하솔지역의 가나안 왕 야빈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치게하였다. 야빈의 군대는 철병거가 900대나 있다고 소개한다. 철 병거는 오늘날 장갑차 수준이었을 것이다. 대단한 병력이었다. 그 당시는 강대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솔왕국은 여호수아가 북부 가나안을 점령할 당시 불을 질러 폐허로 만든 곳인데 야빈이 재건하였고, 그의 수하에 시스라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20년 동안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②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은 여선지자 드보라를 등장시킨다. 드보라는 사사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녀에게 나아가 재판도 받았다. 그런데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 자신과 싸우러 나가자고 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않으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4:6) 이 구절을 보면 드보라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바락에게 명령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바락이 주저주저한 것이다. 그러면서 드보라가 가면 나도 가고 안가면 나도 안간다는 약간의 치사한 말을 하게 된다. 드보라가 여자임을 알면서도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여간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다볼산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다볼산 아래에서 바락과 시스라가 전투를 하게 되는데, 여호와께서 시스라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신다. 이때 바락이 시스라의 군대를 쳐부수는 것이다. 전쟁이 너무 쉽게 끝나는 것 같다. 그런데 시스라가 살아서 도망을 치는데,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속으로 숨게된다. 야엘이 보니 시스라는 하솔왕국의 장군이었음을 순간 알아차린다. 그녀가 시스라를 영접했다는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사사기 4 17절에는 하솔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분명히 겐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인데 하솔왕과 화평이 있었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화평은 상호협정을 맺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솔왕과 헤벨과의 사이에 협정이 아니라 겐 족속 사이의 협정인 것이다.  

 겐 족속은 이스라엘 거주지역의 다소 남쪽에 거주한 유목민족이었다. 성경에서 모세의 장인을 겐 족속으로 소개한다. 모세는 겐 족속 십보라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사사기 4 23절에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라고 하셨다. 이렇게 되면 겐 사람의 집(헤벨과 야엘)이 이스라엘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겐 족속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인과론적인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록 겐 족속과 하솔왕과의 협정이 있었음에도 야엘은 시스라를 죽이고 만다. 시스라의 죽음에 대해서 학자들 간의 이견이 있어왔다. 산문과 시의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쿠걸에 따르면 사사기 4장의 산문에는 야엘이 시스라에게 마실 우유를 주고 그를 침대에 뉘였다. 그 다음에 그가 잠든 사이에 그에게 다가가 말뚝을 그의 머리에 박았던 것이다. 그런데 시의 경우 드보라의 노래에서는 “시스라가 물을 구하자 그 여자가 우유를 주었는데, 값진 그릇에 엉긴 우유를 가져다 주었다. 그 여자가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고 오른손으로 대장장이의 망치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부수었으니”(5:25-26) 약간 다른 이미지를 나타낸다. 시가 바로 그런 것이다. 시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사실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 한 여러 모양으로 변형시켜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시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5) 기드온 

 

①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드보라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또 다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하나님앞에서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자 하나님은 미디안, 아말렉, 동방족속을 일으키시고, 7년 동안 그들의 손에 넘기셨다. 그들은 낙타를 기동력으로 사용하는 유랑 유목민이고, 추수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 침공하여 땅의 소산과 가축을 약탈해갔다. 당시 그 무리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메뚜기 떼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하다”라고 했으니 그들의 큰 무리를 짐작할 수 있다.  

 

②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기드온을 사용하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오브라”라는 지역에 이르러 상수리나무에 앉아있었는데,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그 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신다. 앞의 사사들을 보면 옷니엘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주셨다. 그리고 에훗은 구원자를 세우시겠다고 하여 갑자기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고 볼 수 있다. 삼갈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드보라의 경우 시스라와 바락이 싸우는 중에 여호와께서 개입하시고 시스라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이 기드온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알려주신다. 그런데 기드온은 하나님의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6:17-21) 기드온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할 일을 알려주시는 것이었다. 기드온이 싸우러 나갈 때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다.  

 그런데, 기드온이 하나님께 이스라엘 구원의 징표를 달라고 했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둘터이니 주변 땅이 마르고 양털이 마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믿겠다고 한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노하실줄 알지만 노하지 말고 자신에게 다시 꼭 같은 방법으로 한번 더 징표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하나님은 두말없이 그대로 해주었다.  

 하나님도 이번에는 기드온을 시험해 보려했다. 기드온의 군사들을 물가로 인도하여 물을 먹는데 두 가지의 방법(물을 개처럼 핥아먹거나 무릎을 꿇고 먹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아무 방법이나 선택하도록 하신다. 그런데 핥아먹은 군사가 300명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300명 외에는 모두 집으로 가도록 하셨는데, 기드온은 대단히 많은 걱정을 하게되었다. 사실 300명으로 엄청나게 많은 적들과 싸우는 것은 특단의 비책이 없으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걱정스러우면 부하 1(이름: 부라)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진영 근처에 와보니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의 연합국 군대가 엄청난 것이었다. 기드온은 정말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부하의 꿈을 통해 두려움을 없애도록 하셨다. 꿈은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들어가 장막을 무너뜨려”(7:13)미디안과 모든 진영을 쓰러뜨리겠다고 부하를 통해서 설명해주었다.  

 기드온의 첫 사명은 바알신당을 파괴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백성이 두려워 밤중에 바알제단을 파괴했다. 그러므로 그의 아비 요아스는 그를 “여룹바알”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작전은 횃불을 감춘 항아리를 깨뜨려 미디안 족속과 낙타를 놀라게하여 그들 상호간 혼란을 일으켜 자멸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스르엘 골짜기에 편만한 미디안과 아말렉 및 기타 민족의 연합군은 기드온 300명의 횃불작전에 걸려들어 침략군과 낙타 떼는 자기편끼리 죽이는 소란 끝에 퇴각하고 말았다.  

 기드온이 전쟁 중 요단강에 이르러 숙곳과 브누엘에서 군량미를 공급받도록 요청했는데, 이들은 거절하고 만다. 그리고 적군의 왕(세바와 살문나)을 기습 공격하여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숙곳과 브누엘을 초토화시켜 버린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심문하고, 그들을 처형하였으며,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을 가져갔다. 그리고 40년 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이 글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기드온은 세번의 표징을 하나님의 사자와 하나님께 요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두려움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상응하는 시험을 하시게 된다. 300명으로 싸우도록 하셨다. 믿음에 대한 불확실은 훨씬 더 강한 불확신을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의 세명의 사사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단순하게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드보라의 경우는 바락이 하나님의 뜻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가지는 것을 보게된다. 이번에 기드온은 표징을 세번이나 구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하나님이 직접 싸우실 때는 쉽게 처리가 되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세워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고 일을 시작할 때는 인간의 믿음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싸움의 결과물이 문제였다. 적의 낙타목에서 떼낸 장식사슬에 탈취한 금으로 만든 에봇을 달아두었는데, 이것이 올무가 될 줄이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8:27) , 음란하게 위한다는 것은 그것이 우상의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기드온에게는 가나안의 여인 첩이 있었다. 그리고 첩으로부터 아비멜렉이라는 자가 태어나게 된다. 그는 그의 형제 70명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3년을 다스렸다. 그를 반대하는 많은 반란이 있었는데, 그는 반란을 소탕하던 중 무심코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어져서 죽고 말았다.(사사기9:1-57)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을 한때 다스렸으나 그를 사사로 보지 않는다.   

 

(6) 돌라와 야일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그가 에브라임의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23년 만에 죽었다고 한다. 돌라는 요단 서편을 다스렸다.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에게 아들 30명이 있어 어린 나귀 30을 탔고, 성읍 30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불렀다. 야일은 요단 동편을 다스렸다.  

 돌라와 야일에 대해서는 성경에 하나님이 왜 사사로 세웠으며, 그들은 어떤 활동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전후 사건들을 통해서 볼 때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분명히 외부의 침략은 없어 보인다. 있었으면 분명히 언급을 하련만, 그러나 이스라엘 내부에는 외부의 침략에 버금가는 것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비멜렉의 사건이다.  

 기드온에게는 가나안의 여인 첩이 있었다. 그리고 첩으로부터 아비멜렉이라는 자가 태어나게 되었다. 그는 그의 형제 70(요담은 살아 남)을 죽이고 세겜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왕이 되어 3년을 다스렸다. 그는 방탕했으며, 경박한 사람들을 밑에 두고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 당시의 아비멜렉에 대해서 기드온의 아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담이 나무이야기를 만들어 아비멜렉이 가시나무요 의롭지 않은 자이며, 그를 따르는 세겜 사람들도 하나님의 불이 내릴 것이라고 소문을 내었다. 그리고 요담은 브엘로 도망가서 지내게 된다.  

 3년 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어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기드온의 아들 70명에게 저지른 죄과와 이를 동조한 세겜 사람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를 반대하는 많은 반란이 있었는데, 그는 반란을 소탕하면서 많은 백성을 살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는 반란을 소탕하던 중 무심코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어져서 죽고 말았다. 그런데 여자가 던진 멧돌에 맞아죽었다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아서 자기부하에게 자기를 찔러달라고 해서 젊은 부하가 찔러죽인다.(9:1-57)  

 이런 아비멜렉의 사건을 통해서 몇가지의 국내적 상황을 엿 볼 수 있다. 첫째, 형제간의 암투였다. 아비멜렉은 첩의 자식이었다. 형제 70명을 죽였다. 물론 요담이라는 기드온의 아들이 살았지만 골육상쟁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둘째, 아비멜렉의 어머니 즉, 기드온의 첩은 세겜 사람과 내통하여 기드온의 자식 70명을 몰아내도록 외부세력을 끌어들였다. 셋째, 아비멜렉의 어머니는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개를 내어 아비멜렉에게 주니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했다. 신전의 돈은 하나님의 것인데, 마음대로 쓰고 그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게 했다. 넷쩨, 내부분열이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이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9:28) 하나님은 내부의 엄청난 분열과 골육상쟁, 암투, 살해, 신전에서의 불경한 행위들 때문에 사사를 세워 불안을 잠재우도록 하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내부 분열을 암시하는 것은 돌라와 야일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사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야일이 성읍 30개를 가졌다고 하므로 대단한 영역이었을 것이다. 

  

(7) 입다 

 

①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이스라엘은 평화로워지자 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종전보다 더 많은 이방신을 섬겼다. 그들은 바알, 아스다롯, 아람 신, 시돈 신, 모압의 그모스 신, 암몬의 블록 신, 블레셋 신들을 섬겼다. 이같이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범죄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한 징벌로서 암몬 족속과 블레셋 족속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된다.  

 

②하나님의 구원 

 입다가 사사로 되는 과정은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할 때부터 시작되며, 암몬 사람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한다. 그리고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이어서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과정을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돕 땅에서의 입다, 둘째, 암몬과의 협상 과정에서의 입다, 셋째, 하나님의 영이 임한 때의 입다, 넷째, 이스라엘 전체를 아우르는 입다로 구분 할 수 있다.  

 입다의 출생과 에브라임 사람들과의 싸움을 통해서 볼 때, 그다지 이스라엘 내부의 상황은 좋지 않은 듯 보인다. 입다의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그리고 길르앗에게서 났고, 길르앗에게는 정실 부인과 아들들이 있었는데, 가족 간의 갈등이 심했으리라, 정실 부인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입다를 쫒아내며,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11:2)라고 하였다. 입다는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데 입다는 큰 용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입다의 아버지는 길르앗 사람이라고만 전할 뿐 이름이 없다. 길르앗은 이름이라기보다 지방의 이름인 것 같다. 지방의 이름과 사람의 이름을 혼용하고 있는데, 아무튼 입다는 힘깨나 쓴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돕 땅에서 “잡류가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11:3) 분명히 불량배들과 어울렸던 것이다. 아마 불량배들의 보스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데 암몬사람들이 길르앗을 치려할 때,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장군으로 영입하려고 했던 사실이다. 왜 그렇게 했는가? 그런데, 입다가 장로들에게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쫒아내지 아니하였는가"라고 반문했다. 아들들이 쫒아내었지 어떻게 장로들이 쫒아내었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장로와 아들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첫째, 장로와 아들은 별개인데, 입다가 길르앗에서 당한 과거를 생각해보면서 “길르앗은 나와 상관없는데, 왜 나에게 와서 부탁하는냐” 라고 하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며, 둘째, 아들들이 장성하여 장로가 되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입다의 아버지는 길르앗에서 제사장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장로는 그의 가족과 같은 의미를 가지므로, 장로에게 하는 말은 곧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입다가 큰 용사였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버지의 지위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입다는 분명히 길르앗에서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대단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길르앗에서 어머니가 기생인 관계로 분노하고, 가정에서도 불화를 일으키고, 밖에 나가서도 주먹질을 하고 돌아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돕 땅으로 갔을 때도 소문을 듣고, 잡류들이 모여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길르앗에는 암몬사람들과 싸울만한 장수가 그렇게 없었느냐 하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입다가 초기에는 불행했으나 고난을 극복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언급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입다는 이미 길르앗에서 쫒겨나기 전에 큰 용사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를 영입하려고 했을 것이다.  

 두번째 과정은 암몬과의 협상과정이다. 전쟁을 하기 전에 사신을 보내어 상호의 입장을 교환하는데, 암몬 측은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원래 우리의 땅이었는데, 이스라엘이 빼앗았으므로 이제 돌려주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측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면서 출애굽과 가데스에 이르러 에돔을 지나가게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모압왕에게도 거절당해 그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길로 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아모리 족속 시흔에게 사자를 보내어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공격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흔을 치도록 하셨고, 그 땅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는데, “너희 신(그모스)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쫒아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300년이 지났는데 왜 그동안 말 한마디 없다가 갑자기 공격하느냐고 물었다.  

 양쪽의 과정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암몬의 입장은 단순한 과거의 지배적 사실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측은 “싸움을 걸어온 것은 암몬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했기 때문에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고, 300년간 지배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입다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스라엘의 과거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밝히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께도 도움의 요청의 근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장군으로 영입할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너희의 머리가 되겠는냐 하니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11:9-10)라고 말한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입다는 여호와의 도움으로 장군이 되었다는 확증을 했고, 분명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물론 암몬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논리를 거부했다. 

 세 번째 과정은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11:29) 드디어 입다가 사사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입다는 하나님께 문제의 서원을 하는데, “암몬 자손을 내게 넘겨주면,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11:31)라고 서원을 했다. 하필이면 입다의 무남독녀가 영접을 한 것이었다. 입다는 고통스러운 말을 했다. “어찌할꼬 내 딸이여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11:34-35)  

 여기에서 입다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엄격히 인간 번제의 제사를 금지하고 있다. 입다가 서원한 후 이스라엘은 암몬과 싸워서 이겼다. 하나님이 서원을 받았다는 것이 아닌가, 유동근에 의하면, 번제물에 대해서 어거스틴, 오리겐, 루터, 매튜헨리 같은 사람은 인간 제물로 해석했다. 그런데, 11 39절에 딸이 두 달간 산에 가서 친구들과 슬픔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해서 허락한 후, 두 달 후에 돌아와 “입다는 자기가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개인적인 견해로서 이는 인신제사가 아니고, 하나님께 완전히 수절하여 이 세상과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원 후 하나님이 입다의 기도를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서원의 내용이 하나님이 금지하는 내용인데, 무조건 서원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번제물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도록 하나님이 시험하셨지만 돌이켜 동물을 준비하셨듯이 하나님에게의 번제물은 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딸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 즉 인간생활에 있어서는 죽음과 같은 그런 것임을 깨닫는다.  

 네번째 과정은 에브라임과의 싸움이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의 사람으로서 서로 싸우는 것은 분명 지파간의 갈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에브라임과의 싸움을 통해서 12지파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이 된다.  

 

(8) 입산, 엘론, 압돈 

 

 입다의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사사가 되었다. 사사가 된지 7년째에 그가 아들 30명과 딸 30명을 결혼시켰는데, 딸들은 밖으로 시집보냈고, 아들들은 밖에서 여자 30명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12:8-9) 

 엘론은 스불론사람으로 사사가 되어 1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죽은 후에 스불론 땅 아얄론에서 장사했다. 

 압돈은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로서 사사가 되었는데, 사사가 된지 7년째에 아들 40, 손자 30, 어린나귀 70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압돈은 죽어서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서 장사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입산과 압돈의 경우 사사가 된 후 7년째에 아들과 딸 그리고 결혼, 재물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 아마도 국내외적인 문제가 많이 줄어들은 것 같다. 결혼과 많은 자식의 이야기가 나오면 살기 좋았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 삼손 

 

①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이스라엘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함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셨던 것이다. 블레셋 민족은 사사 삼갈때부터 애굽과 팔레스타인에 침공하기 시작했다. 1세기를 지난 그들은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및 가드에 근거를 두고, 철제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는 당할 수 없는 큰 대적이었다. 블레셋은 북으로는 이스라엘 골짜기를 따라 요단강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지중해 연안의 도성을 침공하고 있었다.  

 

②하나님의 구원 

 삼손은 블레셋과의 경계지점인 단 지파의 땅 소라라는 지역의 마노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삭, 야곱처럼 천사의 예고에 의해 태어났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13:3) 마노아의 아내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모태로부터 성별되었다,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그리고 경건한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그의 머리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태어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마노아와 천사가 서로 이야기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마노아는 그의 아내로부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이야기한 것을 듣고, 하나님께 천사가 다시 한번 오게하도록 기도를 드린다. 천사가 와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사가 마노아에게 나타나지 않고,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서 마노아에게 알렸다. 마노아가 천사를 만나서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입니까”, 하니 “내가 그로다”라고 대답했다. 왜 마노아는 “천사가 아닙니까”라고 묻지않고, “사람이냐”고 물었을까, 천사도 “그렇다고” 대답한다. 분명히 육신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시절, 쫒겨난 하갈에게 천사가 나타나듯이 유사하다.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3차원과 4차원의 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순간 몸의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물론 두가지 다 였을 것이다.  

 마노아는 천사임을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노아가 당신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여호와의 사자는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면서 “기묘자라 하니라”라고 대답했다.(13:18) 여기에서 천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자”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13:19-20) 그제야 마노아가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의 말로는 믿을 수 없고, 확실히 보여주지 않으면 못믿겠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보지않고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알 수 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이 지배할 때에 사사로 20년을 지냈다고 성경은 말한다(15:20) 

 삼손이 결혼을 위해 부모와 약간의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하필 삼손은 딤나에서 블레셋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부모에게 가서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부모는 어째서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려냐고 반대의 뜻을 나타내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블레셋을 치기 위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 나온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14:4)  

 삼손은 부모와 함께, 그 여자를 만나러 딤나로 내려가게 된다.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해보니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부모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해보지 않고, 멀치에서 보고 반한 것 같다. 부모와 블레셋에 내려가서 여자를 만나 이야기해 보니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왔다가 얼마 후 아내를 맞이하려고 다시 딤나로 내려갔다.  

 그런데 딤나에서 한가지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는데, 내려가는 도중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는데, 사자 한 마리가 으르릉대고 있었다. 삼손이 포도원에 있던 사자를 염소새끼 죽이듯이 죽여버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딤나로 다시 내려가다가 죽은 사자의 몸에서 벌이 날아다니고, 꿀이 있는 것을 보고 꿀을 떼어다가 먹고, 그 중 일부를 부모에게 주게된다. 사자에게서 일어난 일들은 부모가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함께 다녔는데, 부모는 보지못하고 삼손에게만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 잠깐 부모와 헤어졌는 모양이다. 아마 이 이야기는 삼손에게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과 장차 사자를 죽인 것 같이 블레셋을 쳐부순다는 것과 죽은 사자의 몸에서 꿀이 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는 예고인 셈이다. 하나님이 블레셋 민족에게 행하기 전에 슬쩍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삼손의 부모와 블레셋 여인의 부모와 상견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축하 잔치가 벌어지는데, 7일간 잔치를 했다고 한다. 블레셋 민족에게는 결혼풍습이 있었다. 청년들이 30명 몰려와서 신랑과 친구가 되고, 함께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삼손이 수수께끼를 내는데, 수수께기를 알아맞히는 조건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내기로 걸겠다는 것이다. 수수께끼의 내용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맞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7일 안에 풀라는 것이다. 30명의 친구들은 7일간 도무지 풀지못해서 삼손의 아내에게 협박을 하게된다.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지 않으면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여자에게 우리 소유를 뺏기 위해 우리를 이 자리에 청한 것이 아닌가”라고 협박했던 것이다. 그들은 포악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삼손이 게임을 걸때 게임에 자신이 없었으면 안하면 되지, 게임을 한다고 해놓고 자신이 없으니까 협박으로 답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그 여자가 삼손에게 답을 알려달라고 울면서 애걸복걸하는데, 처음에는 알려주지 않다가 나중에 결국 답을 알려주니 삼손의 아내가 청년들에게 답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에 청년들이 와서 삼손에게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라고 수수께끼의 답을 말해주었다. 청년들이 말 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한 것이나 그들의 답을 의역하면 “너희 이스라엘이 블레셋보다 강하여 블레셋을 칠꺼야” 라는 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삼손은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14:18)라고 응대를 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30명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자기 아버지 집으로 올라온 것이다. 암송아지는 삼손과 결혼한 여자를 암시한다. 이스글론에 내려가서 30명을 쳐 죽인 사건은 하나님이 블레셋을 치기 위한 수순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삼손은 염소 새끼를 가지고 결혼 한 여자 집으로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그의 장인이 삼손이 자기 딸을 미워하는 줄 알고 “네 친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아마 결혼 축하연 때 맺은 친구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의 장인은 삼손에게 여자의 동생과 결혼하도록 주선했는데, 삼손은 블레셋 사람을 해치겠다고 협박했다.  

 삼손이 여우 300마리를 잡아서 서로 꼬리를 매고, 꼬리 사이에 홰를 달아서 홰에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불살라 버렸다. “홰”라고 하는 것은 갈대나 싸리를 묶어서 불이 쉽게 붙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냐고 물으니 블레셋 사람들 중에 “삼손의 장인이 결혼한 딸을 삼손에게 안주고 친구 청년에게 주어서 삼손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했다. 화가 나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장인과 삼손의 아내를 모두 죽여버렸다. 그리고 삼손은 원수갚는다는 핑계로 블레셋 사람을 죽이게 된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유다로 몰려왔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이 어찌 이렇게 하는가 물었더니 “삼손이 우리 민족의 사람을 죽였으니 우리가 그를 포박하여 데려 갈려고 이렇게 모였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유다사람 3,000명이 삼손을 결박하기 위해 삼손이 머물고 있었던 에담바위 틈으로 가서 삼손에게 죽이지 않고 오직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겠다고 밧줄로 결박하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소리지르며 몰려왔다. 그때에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여 그 팔위의 밧줄이 불탄 심같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버렸다. 그리고 삼손은 나귀의 턱뼈가 길에 있는 것을 보고 집어들어 약 1,000명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 턱뼈를 던져버렸는데, 그 곳이 “라맛레히”라고 이름하였다. 그리고 목이 말라서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우묵한 곳을 트뜨려 물이 솟아나게 해 주셨다. 그 샘을 “엔학고레”라고 하였다.  

 삼손이 “가사”라는 곳으로 가니 그 곳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하는데, 성문을 해체해 버리는 등 너무 힘이 강하니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기생 집을 들락거렸나보다. 기생 드릴라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드릴라를 이용하기로 돈으로 매수한다. 1,100개를 주고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도록 했다.  

 드릴라가 간청하여 기밀을 알아내려 했다. 처음에는 삼손은 마르지 않은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힘이 약해진다고 거짓으로 드릴라에게 말해준다. 속은 것을 알고, 드릴라가 다시 간청하니 쓰지 아니한 새 밧줄로 결박하면 된다고 또 거짓말을 하였다. 또 다시 속은 것을 알고, 다시 세 번째로 간청하니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고 또 거짓말을 한다. 다시 속은 줄을 알고, 그 후 날마다 재촉하니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사실을 말하게 된다. 삼손이 포로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살펴보면 세 번의 거짓말을 한 뒤에는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세 번의 거짓말을 하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결박하려고 시도한 것을 삼손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재촉한다고 자신의 특급비밀을 죽을 줄 뻔히 알면서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드릴라가 너무 예뻐서 죽더라도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결혼을 한번 해 보았기 때문에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전에 딤나의 여인에서 보듯이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곤란을 한 번 겪어보지 않았는가, 결국 삼손은 딤나의 여인을 버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가버린 경험이 있었다.  

 둘째, 상황분석을 잘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이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어떤 계획을 꾸미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심리적 공황상태였던가, 삼손은 세번의 거짓말 이후에 드릴라가 재촉하는데, “말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그리고 진심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과정은 매일 조르고, 마음이 번뇌하고, 진심을 드러내고의 3단계의 심리적 변화를 그려낸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 심리적 변화에 이끌려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학습과 행동심리학에서 “자극통제”라는 용어가 있는데, 예를 들어 불이 켜지면 레버를 누르고, 불이 꺼지면 레버를 누르지 않는 것을 학습한 쥐를 생각해 볼 때, 불빛이 쥐의 행동을 통제한다. 이 경우 환경은 쥐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데, , 불이 켜지면, 레버를 높은 비율로 누르고, 불이 꺼지면 레버누르기가 감소되는 것이다. 변별 훈련을 통해 변별자극의 영향 하에 있을 때를 폴 챈스는 그 행동을 자극 통제하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행위가 그 결과를 뻔히 알면서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되는데, 계속 같은 상황을 보게되면 생각과 마음이 동화된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동화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결심 상태가 허물어지게 되고, 새로운 마음의 결심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러한 것은 불현듯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극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드디어 마음먹은 것을 바꾸는 결정을 하게 된다. 결과를 인지하고 있지만 동화되어 있는 마음이 결과의 인지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일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망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계속 잘못된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반복하게 되면 잘못을 인정하게 되고, 다시 잘못을 수정하려는 마음의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가게 되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눈을 빼고, 놋줄을 메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다. 그런데 다시 삼손의 머리털이 자라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포로가 되었으므로 머리털이 자란 것에 대해서 인식을 못한 것 같다.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다곤신전”에서 삼손을 재주부리도록 하여, 삼손이 재주를 부렸다고 한다. 그때 그 모습을 구경하던 블레셋 사람들은 3000명 가량 되었다고 한다 .어떤 재주인지 알 수 없지만 흥미롭다. 삼손은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기둥에 자기를 의지하도록 요청하여 기둥에 의지한다. 그 때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하고는 기둥을 밀쳐 건물을 붕괴시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을 몰살시켜버리고 삼손도 죽게 된다. 

 삼손은 두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딤나 여자와 드릴라였다. 딤나 여자의 경우 사건의 중심은 블레셋을 치는 이야기인데, 삼손이 블레셋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리고 수수께끼의 비밀을 스스로 딤나 여자를 통해 블레셋 사람에게 이야기 해줌으로서 수수께끼를 알아맞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것을 대가로 지불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고 빼앗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치게 하시지만, 삼손은 블레셋을 치기 위한 구실로서 수수께끼를 동원하게 된다. 그런데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블레셋 청년들이 딤나의 가족에게 수수께끼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 것이다. 협박은 결국 삼손으로 하여금 다른 블레셋 사람을 죽이는 계기가 된다. 입다의 예에서도 그랬고, 출애굽시 가나안으로 이스라엘이 들어갈 때 암몬왕에게 암몬 땅을 통과만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암몬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진멸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된 것과 같은 이치를 보여준다.  

 그런데 드릴라의 경우는 좀 다르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이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고, 드릴라를 매수하여 그 비밀을 캐고자 한 것이다. 삼손이 비밀을 알려준 것은 딤나 여자와 비슷하나 그 의도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딤나 여자의 경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삼손이 의도적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드릴라의 경우 삼손이 기생에게 빠져서 마음의 변화가 생겨가지고 특급비밀을 누설한 것이다. 위의 두 가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실인이라 할지라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상태가 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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