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왕정시대

 

13. 왕정시대

 

(1)최초의 왕국 사울왕 

 

①블레셋과의 전쟁 

 1차 전쟁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게바에서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여 발생하는데, 블레셋의 군대는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6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서 굴과 산의 바위 등에 피신해서 숨었다고 하니 대단했을 것이다. 군의 장비를 비교하면 사울과 그의 아들에게만 칼과 창이 있고, 나머지 군인들은 600명 정도되는데, 괭이, , 쇠스랑, 도끼, 무딘 쇠채찍 등이었다고 한다.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수행자 1명과 함께 단독으로 사울에게 이야기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서 블레셋 진영으로 싸우러 들어간 것이다. 요나단이 블레셋에게 보일때, 만일 블레셋 군사들이 요나단에게 오면 어쩔 수 없지만, 블레셋 군사들이 요나단에게 올라오라고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표징으로 삼자고 혼자 결심하면서 블레셋 군사들에게 접근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블레셋 군사들이 요나단을 보고,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도우시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적진에 들어가서 공격을 하여, 블레셋 군사 30명 정도를 처치했다. 이때 멀치감히 이 장면을 보던 사울이 부하에게 “저쪽에서 싸우는 자가 누구냐”고 하니 요나단이라고 알려주자, 사울은 공격의 명령을 내린다. 사울의 군사들이 가보니, 블레셋 군사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큰 승리를 거두고 블레셋을 계속 추격하게 되었다.  

 2차 전쟁이 있었는데. 다윗과 골리앗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양 진영으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블레셋의 골리앗이 워낙 덩치도 좋고, 기가 강해 이스라엘 군이 공격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군사 중에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라는 세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같이 군대에 입대했다. 그런데 그들 형제들 외에도 막내가 있었는데, 양을 치고 가끔 싸움터에 음식을 배달하곤 했던 모양이다. 그의 이름은 다윗이었다.  

 싸움을 하던 어느 날 다윗이 형들에게 음식을 배달하던 중 골리앗이 상대 진영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들었는데, 이스라엘 군사들이 두려워 떨고, 도망하는 것을 보고 물어보니, 사울이 “그를 죽이는 자는 많은 재물도 주고, 딸도 주고, 세금도 감면해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듣게 되었다.  

 다윗은 이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블레셋 사람이 누구인데, 하나님의 군대를 감히 모욕하는냐”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빨리 돌아가지 않고 무엇하느냐”고 하는데, 군인들이 가만히 들어보니 다윗이 한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 말이 소문을 타고 흘러 사울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울이 생각해 보아도 맞는 말이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사울은 다윗을 수소문하여 왕궁으로 오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한 자초지종을 물었다.  

 다윗은 “자기는 양을 지키는데,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그것을 건져내었고, 그것들을 쳐 죽였습니다. 사자와 곰도 쳐 죽였는데, 사자와 곰을 쳐 죽이듯이 제가 블레셋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인데 블레셋이 뭐가 두렵겠어요” 라고 사울에게 이야기했다.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대장이 되어 가도록 허락하시고 자기 투구와 갑옷을 주지만 사양하고, 그냥 평소하던 대로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가에서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군사들에게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물 맷돌로 골리앗을 쳐 죽였다. 이 내용은 마치 사사시대에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사람 600명을 죽인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사울이 승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다윗을 지도자로 세우는 과정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엘리 대제사장과 사무엘의 이취임, 사무엘과 사울왕의 이취임을 살펴보면 하나님 명령에 불복종 할 경우 권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무엘은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이라는 곳에 살았던 엘가나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아주 산 꼴짜기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엘리 밑에서 지냈기 때문에 세상의 때묻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울도 연약한 지파인 베냐민의 기스라는 농촌 출신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사나 짓고 하던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다윗도 양을 치던 목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지도자를 세울 때는 순전한 상태였지만 권력이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사실이다.  

 3차 전쟁 당시에는 다윗도 없고, 사무엘 선지자도 세상을 떠났으므로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 사울왕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그녀의 말을 듣는 우둔한 모습을 본다. 당시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 평야에서 요단강에 이르기까지 장악했고, 팔레스타인 중앙 산지도 그들의 세력이 뻗쳐왔다.  

 블레셋은 이스르엘 골짜기 북쪽 수넴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길보아 산에 진을 쳐 대치했다. 이 전쟁에서 사울왕과 요나단을 포함한 세 아들이 전사했고, 군사는 도망했다.(삼상31:1-6) 야베스-길르앗 군사들은 사울왕 생전에 그들의 성읍을 암몬사람들의 손에서 구했던 것을 기억하고, 야음을 틈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벳-스안에 장사를 했다.  

 이같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패했고, 다윗과 그의 군대도 블레셋 성읍에 있으면서 그들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길보아에서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는 마지막 승전이었다.  

 

②세 왕국과의 전쟁 

 모압과 암몬은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대전했으나 싸운 장소의 기록은 없고,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그들은 이스라엘에 예속되지 않았다. 에돔과의 전쟁은 모압과 암몬과 싸울 당시 그들 세 왕국은 인접한 나라였기 때문에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운 것으로 여겨진다. 소바 왕국은 시리아 다메섹 북쪽 인근 왕국이며, 다윗왕 통치에 이르기까지 북부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왕국과의 대전은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침공함으로서 사울왕은 이를 방어하기 위한 작전으로 여긴다. 

 

③아말렉과의 전쟁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우는 동기는 하나님께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쳐서 멸망시키라”(심상15:2)는 것이다. 사울은 군사를 20 만명을 앞세우고 싸우로 갈 때에 겐 족속은 떠나라고 한다. 그런데 사울이 아말렉왕 아각을 사로잡고 백성을 진멸했는데, 왕과 그의 양, , 양 등 좋은 재물을 취하게 된다. 하나님은 남녀, 소아, 젖먹는 아이, 우양, 낙타 나귀 등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④ 사울의 질환과 다윗에 대한 적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무엘로부터 폐위 선언을 받은 후 사울은 정신질환을 갖게 된다. 결국 왕이 번뇌할 때에 이를 달래기 위해 수금타는 악사를 구하게 되었는데, 다윗이 선택되어 왕궁에 출입하게 되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뜨린 후 군대장관이 되고, 백성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게 되자, 사울은 다윗에 대해서 질투하여, 평일과 같이 수금을 타던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블레셋과 전쟁을 해서 블레셋사람 양피 100개를 가져오면 자기 딸과 결혼할 수 있도록 다윗에게 명령을 했다.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사람 200명을 죽이고 양피를 왕에게 주어서 사울왕의 딸 미간과 결혼을 하게 된다. 사울은 더욱 다윗에게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⑤다윗을 죽이기 위한 사울의 추적과 악행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여러 번 추적을 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만다. 이러한 추적과 악행을 몇가지로 구분해서 보면  

 첫번째는 사울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해서, 다윗이 이스라엘 수도 기브아에서 라마로 도망하게 된다. 사울왕이 라마에서 도주한 다윗이 사무엘과 함께 있다는 소식에 다윗을 잡으려고 라마로 간다. 그러나 다윗이 다시 기브아에 도망한 것을 알게 되고,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은 평화의 맹세를 하고 헤어진다. 

 두번째는 다윗이 당시 여호와의 성막이 있던 예루살렘 북쪽 약 3km 지점, 놉에 도망하여 아히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다윗은 가드라는 곳으로 도망하게 된다. 그 곳의 왕 아기스가 다윗이 어떤 인물이지 신하로부터 듣게 되는데, 다윗이 불안을 느껴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치광이 노릇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블레셋과 유다경계 지점 아둘람 동굴에 도망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의 친족과 마음이 원통한 자 및 빚진 자들 약 400명을 모아서 전투부대를 편성하고, 모압 땅에 도망하여 모압왕의 보호하에 있게 되는데, 선지자 갓이 나타나서 그곳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사울이 그 이야기를 듣고, 신하들에게 다윗이 요나단과 평화맹세를 하는 바람에 자기에게 다윗을 고발하는 자가 없다고 하니, 에돔사람 도엑이 놉에서 아히멜렉이 숨겨주고, 골리앗의 칼도 주었다고 알려주므로, 사울왕은 제사장과 온 가족을 비롯하여 놉의 백성을 살해하고 만다. 아비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이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다윗에게 가서 사울왕이 저지른 일을 알려주었다.  

 세 번째는 다윗이 헤브론 서북쪽 그일라 성읍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게되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 곳을 구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사울왕에게 알림으로 다윗과 그의 추종자 600명은 황무지로 도망을 하게된다. 십 황무지에서 요나단과 마지막으로 평화의 언약을 세우기는 했지만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여 사울왕에게 알림으로서 다윗은 다시 헤브론 남쪽 마온이라는 지역으로 도망했다. 그러나 다윗의 무리는 사울왕에게 포위를 당했는데, 그 당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므로서 사울왕은 다윗 쫒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요나단과 다윗이 두 번째로 평화의 맹세를 하는데, 결국 이것은 사울왕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다윗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암시를 달아놓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다윗과 일행은 사해를 내려다보이는 엔게디 황무지로 피하게되는데, 이 일을 사울왕이 알게되자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포위하게 된다. 가는 길에 길가에 양의 우리 곁에 굴이 있었는데, 사울이 변을 보러들어 갔는데, 다윗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다윗의 일행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자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베는 표시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왕을 자기가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속담에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는 말을 하면서 사울왕을 죽이지 않은 이유를 다윗은 설명했다.  

 다섯 번째는 다윗이 마온에 들렀을 때인데, 선지자 사무엘이 세상을 떠났던 시기이다. 다윗은 그 곳에서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는다. 사악한 나발을 하나님께서 죽여버렸기 때문에 다윗은 선한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사울왕이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찾으려고, 십 광야 앞 하길라 산 길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다윗이 알게되고, 그들은 사울이 쳐놓은 진에 조용히 접근하여 사울을 죽이지 않고, 다시 사울이 자고 있던 막사 안에서 사울왕의 머리 곁에 있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다.  

 사울이 깨어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멀리서 그러한 사실을 사울왕에게 알리므로서 사울은 또 다시 회개하고 발길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다윗은 블레셋 가드로 사울왕을 피해 갔는데, 그의 아내들, 600명의 호위병은 가드 왕의 “아기스”에게로 가니 사울왕이 완전히 포기를 해버렸다.  

 

(2) 다윗 왕  

①국가의 분열 

 다윗은 유다 땅에 피할 곳이 없어 블레셋 땅 가드와 시글락에서 약 1 4개월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그리고 사울왕이 전사한 후 주전 1010년 다윗은 6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 땅에서 헤브론으로 돌아왔다. 당시 헤브론은 유다 지파 본거지 성읍이고, 다윗은 그 곳에서 유다사람들에 의해 왕이 되었다. 그러나 유다 지파 외 다른 지파는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7 6개월을 유다 왕으로 지냈다.  

 타 지파는 요단 동편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군 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움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이스보셋은 그때 나이가 40세였다. 그는 2년간 왕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스보셋왕은 그의 신하 아브넬이 배반하여 다윗왕에게 투항했고, 이어서 이스보셋왕의 형제 바아나가 왕을 살해함으로서 이스보셋은 왕의 존재로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②내란 

 첫째, 압살롬의 반란이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그의 누이 다말과 이복형제 암논과의 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암논과 다말도 역시 이복형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논이 다말의 매력에 빠져 상사병에 걸려있던 중 친구 요나답(다윗의 조카)이 놀러왔다가 요나답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의 계략을 짜내는데, 암논이 병든체 하다가 아버지 다윗이 오거든 “누이 다말이 자기 집에 와서 과자를 만들고, 직접 먹여주면 나을 거라고” 이야기하면 아마도 아버지 다윗왕이 딸에게 “오빠에게 가서 그렇게 하도록 시킬 것이다. 그때 사랑을 고백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요나답의 계략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복동생 다말이 과자를 만들고 오빠인 암논에게 먹여주려고 가까이 갔을 때 암논이 그녀를 붙잡고 자기와 결혼하자는 것이었다. 다말이 놀래서 “나를 욕되게 마세요, 이스라엘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차라리, 왕에게 가서 정식으로 이야기하세요,”라고 이야기 하니 암논은 그저 즐기자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강제로 겁탈을 해버렸다.  

 그리고 암논이 다말을 오히려 미워하기 시작했는데, 일을 끝내고 하인을 시켜 다말을 집에서 끌어내도록 더러운 짓을 하는 것이었다. 다말은 분해서 울때, 그의 친오빠 압살롬과 다윗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살롬은 다말을 진정시킨 후 조용히 복수의 때를 기다렸다. 다만 왕은 그저 노할 뿐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압살롬의 집에서 양털 깍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는 다윗왕과 왕자들을 모두 초청했다. 왕은 가지않겠다고 하니, 압살롬이 그러면 암논을 비롯한 왕자들이라도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여 왕자들이 압살롬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종들에게 술로 잔치를 벌이고 암논이 거나하게 취하면 신호를 할 때 죽이라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압살롬의 신호에 따라 종이 암논을 쳐죽이니 다른 왕자들은 모두 도망가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소문은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다 죽인 것으로 소문이 나고 다윗왕에게도 전해져 왕이 노발대발 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왕의 조카 요나답이 “모든 왕들이 죽은 것은 아니고 압살롬이 다말의 사건 때문에 복수하기 위해 암논을 죽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압살롬은 그술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압살롬이 도망한 후에 다윗의 마음이 풀렸는 것 같아서 요압이라는 사람이 “드고아”라는 여인을 시켜서 왕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 여인은 자기는 과부이고 아들 둘이 있는데, 그들이 싸우다가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온 동네 사람들이 죽인 아들을 자기들이 처단할테니 내놓으라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완전히 가계의 씨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게 되었다고 했다. 왕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듯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은 온 동네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못하도록 시키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맹세코 꼭 이렇게 할 것이라고 여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인이 갑자기 “왕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놓고, 왕의 내쫒긴 자는 왜 돌아오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라고 말하면서 “누구나 죽을 운명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빼앗지 않는 방법도 알려주시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왕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분이라고 높혀 치켜세우니, 그제야 다윗왕이 그 여인에게 이 모든 일을 요압이 시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요압에게 명령하여 압살롬이 돌아오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요압이 다윗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2년간은 다윗왕이 압살롬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삼하14:28)       

 압살롬은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을 앞세우고 반역을 준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송사의 문제에 있어서 판결할 사람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 말고, 자기에게 오면 송사를 해결해주겠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다윗왕에게 “제가 하나님께 서원을 하나 했는데,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윗왕이 “서원 때문이라고 하면 헤브론으로 가도 좋다”고 허락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압살롬이 정탐꾼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보내어 나팔소리가 나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말하라고 선전했다. 압살롬이 200명의 유명 인사를 헤브론으로 초청했는데, 그 사람들은 아무 내용도 모르고 갔던 것이다. 그리고 다윗왕의 모사도 청하였으니 반역이 확대되었다고 한다.(삼하15:12) 

 위의 내용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압살롬이 이복동생을 죽이고 도망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이다. 압살롬은 드고아라는 여인을 통해서 자신이 대를 이을 수 밖에 없는 장자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었다. 드고아라는 여인이 비유적으로 이야기했지만 결국 압살롬이 돌아오도록 허용함으로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다윗왕의 정권을 이어 받을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둘째, 압살롬이 재판관이 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직접 압살롬이 재판을 행한 행위, 이것은 왕위를 물려받는 순서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 서원을 이용하여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갈수 있도록 왕의 허락을 받고 헤브론에서 모든 지파에게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알리고, 제사를 지낼 때에 핵심 권력에 있는 자를 초청하여 완전히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압살롬의 반역 프로그램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다윗왕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판관으로 활동하면서 존재감을 인지시켰으며, 하나님께 한 서원을 이용하여 헤브론을 거점으로 조직적으로 거사를 행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직적 거사를 하나님께 서원의 형식으로 자기 멋대로 만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다윗왕은 피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셋 사람과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600명이 왕 앞으로 행진했다고 한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와 모든 신하가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올라갔다고 한다.(삼하15:30) 이후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윗왕이 피난할 때에 위로하는 자도 있었지만 저주하는 자도 있었다. 므비보셋의 종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다윗을 위로하였지만 시므이라는 사람은 저주하고 돌을 던졌다고 한다. 저주하는 자를 아비새가 가만두지 않겟다고 하자 왕은 “자식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는데, 이 베냐민사람이 하는 것이 무슨 큰 일이냐,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일이니까 내버려두어라”고 그에게 말했다.  

 압살롬에게 두 사람이 함께 했는데, 아히도벨과 후새였다. 후새는 다윗을 섬기던 신하였다. 그래서 압살롬은 그에게 왜 다윗을 따라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후새는 속임수를 써서, 이제 압살롬을 섬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왕의 후궁이 있는데, 후궁을 취하게 되면 소문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질 것이고, 다윗왕이 더욱 분노하면 우리에게는 더욱 힘이 될 것이라고 잘못 건의를 하였다. 하나님은 압살롬의 얼마나 악하게 나오는 지 그냥 내버려 둔 것 같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1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다윗왕을 쳐 죽이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 백성들이 다 돌아올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작전에 대해서 압살롬이 후새를 불러서 물어보니 그 계획은 옳지않다고 말했다. 다윗과 신하들은 용사들이고, 전투에 능한데 그 사람들은 어느 굴에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략을 말해준다. 압살롬이 직접 군사를 모아서 전장에 나아가고, 기습 공격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압살롬과 신하들이 들어보니 후새의 계획이 훨신 더 좋다고 생각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징계하시려고 한 것이라고 한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기의 계획이 성사되지 않자 결국 작전이 실패할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후새가 제사장들에게 작전을 다윗왕에게 알려주도록 했는데,  제사장들의 아들들 “요나단”과 “아히마아”가 작전을 맡았다. 그들이 다윗에게 알리려는 순간에 한 청년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리고 그 청년은 압살롬 부하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두 사람은 급히 바후림이라는 어떤 집의 우물 속으로 피하는데, 그 집 여인이 우물을 덮게로 덮어버림으로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요나단과 아히마아는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렸는데, 오늘 밤에 광야 나룻터에서 자지말고 건너가도록 한다.  

 압살롬은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내세워 많은 군사를 이끌고 길르앗에 진을 쳤는데, 다윗왕은 요압, 아비새, 잇대에게 군사를 삼 등분하여 압살롬을 공격하라고 하면서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고 하니 모든 군사들이 다 듣게되었다.  

 그런데 막상 전투에 들어가니 다윗의 군사들이 용맹하여 압살롬의 군사를 능가하였고, 압살롬은 노새를 탔는데, 노새가 상수리나무 가지 아래로 지나갈 때에 몸이 나무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우하라는 말에 압살롬을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래서 요압이 화가 나서 작은 창, 셋을 가지고 심장을 찔러 죽여버리니 그제서야 군사들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칼로 내리쳤다.  

 그런데 이 소식을 다윗이 듣고는 대단히 슬퍼하였다. 그래서 부하 요압이 다윗왕이 자꾸 슬프하니까, 다윗왕의 모든 것을 구한 군사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하면서 차라리 우리들이 다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자고 말했으며 모든 방백들이 다시 다윗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다윗왕이 피신할 때에 욕을 했던 시므이라는 자가 나와서 다윗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다윗은 너그러이 용서를 해준다. 그리고 왕궁에서 남아있던 므비보셋(발을 저는 자)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해주었다.  

 둘째, 세바의 반역이다. 베냐민 사람 불량배인 세바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다. 아마 베냐민 지파는 상당히 유다 지파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유다지역의 사람들을 제외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버리고 세바를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왕궁의 모든 행사를 중지하고 아마사로 하여금 삼일 내에 군사를 모으도록 했다. 그런데 지체를 하자, 다윗왕은 아비새에게 세바를 잡아오도록 명령한다. 이때, 요압과 용사들이 함께 세바를 잡으려고 출동하는데, 가다가 요압이 아마사를 만나게 되는데, 요압은 아마사가 세바와 내통한 것으로 여겼는지 칼로 죽이고 만다.  

 요압이 세바가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지혜로운 한 여인이 요압을 만나고자 했다. 그 여인은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다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이스라엘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어찌하여 우리의 기업의 땅을 공격하십니까”라고 말하였다.(삼하20:18-19), 그래서 요압은 그게 아니고, 세바라는 자가 다윗왕에게 반기를 드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으니 세바를 내놓으면 물러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혜의 여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아가 설명을 하고 세바를 붙잡아 그의 머리를 베어 성밖으로 던지니 요압이 물러갔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지혜의 여인은 아마도 베냐민 지파의 현자들, 그러니까, 그 지역의 총회에서 세바의 난동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란은 지역적으로 많이 발생했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의 총회는 살아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③ 사회적 혼란 

 또한 다윗의 시대에 3년간 기근이 있었는데, 기근의 이유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모리 사람들 중의 남은 사람들인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에게 화평을 약속했는데, 사울이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아이 성을 점령한 후 여러 민족들을 정벌할 즈음에 기브온 사람들이 거짓으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으려 했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모른채,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도 않고, 단독으로 화친을 맺고 만다.(9:1-16)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기브온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니 이스라엘 영토내에서 살지 못하도록 모해 한 자의 자손 7명을 우리에게 내주면 우리가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목을 메어 달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울의 자손들을 넘겨주고 목을 메어 다니 죽은 때에 곡식을 베니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삼하21:10)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과의 사이에서 농사문제로 물에 대한 분쟁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적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되자 다윗왕은 이방인이지만 잘못을 가려, 사회적 안녕을 꾀한 것으로 여겨진다. 7명을 내주는 것은 아마도 동해보상법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④국가적 통합과 이스라엘제국 건설 

 다윗의 유다와 이스보넷의 이스라엘은 기브온에서 사소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항상 다윗의 군사들이 이겼다. 어느날 이스보셋왕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 사울왕의 첩을 취한 사실을 이스보셋이 알게되어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꾸짓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아브넬은 이스보셋왕을 배반하고, 헤브론으로 다윗왕에게 투항하게 된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과 아브넬 사이에는 악연이 있었다. 과거에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였던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아브넬이 투항했지만 요압이 복수심으로 아브넬을 살해하고 말았다. 다윗은 요압의 복수심으로 죽게 되었지만 아브넬의 죽음을 정말 애도하게 되었고, 애가를 지어서 애도를 표했다.(삼하3:33-34),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아브넬의 죽음이 다윗의 사주에 의해서 죽지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윗이 애가를 짓고, 슬프하는 모습에 감동이 되었다고 한다.(삼하3:35-39) 

 다윗은 사울의 자손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대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5살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급히 안고 도망가다가 아이가 떨어져 다리를 다쳤는데, 그 후로 다리를 절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울과 그 온 집안에 속하였던 것을 그에게 상속하도록 하고 편하게 지내게 해주었다.(삼하9:1-13)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손에 맥이 풀렸고, 그는 군 지휘관 바아나, 레갑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를 죽인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윗은 바아나와 레갑을 처형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반역을 일으킨자는 또 반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온 지파는 자발적으로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했고,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다윗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기름부음을 통하여 통합 왕으로 세웠다. 사울의 군사들이 다윗에게 충성을 돌리고자 서약한 사람들이 339,6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역대상 12:23-40) 이때, 다윗왕은 30세였으며, 4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⑤전쟁과 영토확장 

 첫째, 블레셋과의 세 차례 전쟁으로 블레셋은 병거와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호전적인 헷 제국을 무너뜨렸으며, 애굽의 바로 라메세스Ⅲ세와 전투를 경험한 족속이었다. 사울왕 전사 후 블레셋은 이스라엘 북쪽 지파들과 유다지파 중간지점인 베들레헴에 그들의 수비대를 배치하고, 두 나라의 분열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다.(삼하23:13-14) 그러나 이스라엘이 12 지파로 통합되자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차 전쟁은 예루살렘 서남쪽 르바임 골짜기에서 있었다. 당시의 싸움은 다윗왕이 전체 이스라엘 통합군을 거느리고 처음 있은 블레셋과의 대전이었다. 그는 헤브론 동북쪽 아둘람 굴을 요새로 삼았으며, 블레셋은 르바임 골짜기에 편재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적을 물을 흩음같이 하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을 버렸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우상을 치웠다고 한다.  

 2차 전쟁은 1차와 같은 장소로 르바임 골짜기였다. 역시 블레셋은 골짜기에 편재되어 있었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블레셋 진영 후방을 공격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골짜기로 올라가지 않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게바에서 게셀까지 블레셋을 쳤다고 한다.(삼하5:22-25) 

 3차 전쟁은 블레셋이 다시 공격하여 와서 이스라엘이 싸우다가, 블레셋 사람들 중 거인들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체 전쟁이라기 보다 국지적으로 거인들과 싸운 이야기이다. 거인들과 네 차례 싸웠는데, 처음에는 다윗왕이 블레셋과의 전쟁 후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거인들이 공격을 해 와서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왕을 구한다는 이야기이고, 두번째는 곱에서 후사사람 십브개가 승리하고, 세번째는 역시 곱에서 엘하난이라는 자가 가드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였고, 네번째는 가드에서 싸워 이겼다는 이야기이다. 

 가드에서 싸울 때, 거인들은 무게가 300세겔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찼으며, 창자루는 베틀 채와 같았다고 한다.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6개씩이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혔다.  

 둘째, 사해 동남방 점령인데, 처음 있었던 전쟁은 사해 동부지방 모압과의 전쟁이었다. 모압은 다윗이 사울에게 추격당할 때 피신했던 곳인데, 다윗왕은 극심하게 그들을 쳐서 다루고 복종시켰다.(삼하8:1-2, 대상18:2) 다음은 사해남쪽에서 홍해와 애굽 접경까지 이르는 에돔 지방을 공격했다.(삼하8:13-14, 대상18:12-13) 당시 전쟁은 사해 남단 염곡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다윗왕 군대장관 요압은 6개월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에돔 남자를 다 없앨 때까지 쳤다.(열상11:14-18) 에돔왕의 아들 하닷은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애굽으로 도망쳐 바로의 보호를 받았다. 

 셋째, 아람지역 원정인데, 아람(시리아)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고, 곳곳에 여러 도시국가로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는 다메섹 위의 소바 도시왕국이었다. 소바 왕국은 시리아 동북부 유브라데 상류지역에서 다메섹 이남 요단 동편까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소바 왕국은 적대관계였고, 사울왕 통치 당시도 소바 왕국과 싸운 일이 있었다.(삼상14:47) 다윗왕은 소바 왕국과의 전쟁에서 병거 1,000, 기병 7,000, 보병 20,000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리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맛(오론테스 강변) 왕국, 토이 왕은 다윗의 승전에 놀라 자진해서 항복하고 말았다.  

 넷째, 암몬, 소바 왕국 동맹과의 전쟁인데, 다윗왕은 요단 동편 왕 나하스가 죽자 새로이 즉위한 그의 아들 하눈에게 조의 사절을 보냈는데, 하눈왕은 그들을 정탐꾼으로 취급하여, 그들의 수염을 깍고 의복의 중동볼기(엉덩이 중간쯤)를 잘라 그들을 되돌려 보내면서 다윗왕을 모욕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암몬왕 하눈은 즉시 벧르흡과 소바에서 아람사람 20,000, 마아가에서 1,000, 돕에서 12,000명의 용병을 고용하고, 이스라엘이 공격할 것에 대비했는데, 다윗왕은 군대장관 요압의 인솔하에 우리야가 참전한 전투에서 그들을 복속하였다.  

 다섯째, 여부스 사람들과의 시온 산성에서의 싸움이었다. 다윗은 가나안 족속들의 수중에 있었던 예루살렘이라는 옛 도시를 빼앗는다. 여부스 사람들은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5:6)라고 말했는데, 상당히 요새화되어 있었던 같다. 그런데 다윗은 용병을 동원했다.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하였으므로 속담에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삼하 5:8), 브루거만에 의하면 이 말은 이 도시의 취약점은 수구에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의 부하들이 수로관을 타고 공격했거나, 물 공급을 차단함으로서 항복을 이끌어냈을 것으로 보고있다.  

 

⑥예루살렘 천도 

 이스라엘의 수도 헤브론은 이스라엘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전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데 부적합 한 곳이었다. 사울왕 당시에도 수도로서 부적합 했고,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었을 뿐만아니라 샘물의 원천도 없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천도를 하게 된다.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었으나, 그들은 그 곳 여부스 족속을 추방하지 못하고 동거했다. 점차 그 민족을 다시 장악하고 주변에는 견고한 성곽을 쌓고 외족의 침략을 방어하고 있었다. 다윗왕은 두 차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3) 솔로몬

 

고대국가 시대에는 국경이 없었으며, 민족 이동의 규제도 없었다. 통치하는 왕의 정책과 방향에 따라 국토와 백성이 움직였다. 다윗왕은 영토를 확장해 나갔지만 솔로몬왕은 영토 확장보다 오히려 확장된 영토를 유지하고, 방어하는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 최북단 하솔, 지중해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 므깃도, 블레셋의 경계로부터 게셀, 벧호론, 바알랏 등과 에돔 지방에 병거 성을 건축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북방의 아람 민족 침공과 분쟁이 잦은 다메섹과 시리아의 중앙 지점, 교역의 중심지 다드몰에 군사 기지를 두었다.(왕상9:15-19) 그리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나라, 블레셋으로부터 애굽에 이르는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예루살렘 및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는 성곽을 쌓아 요새화 했고, 군사와 상당수의 병거를 확보하여 전쟁에 대비했다. 솔로몬왕이 항상 준비하고 있던 마병은 12,000명이었고, 말을 입고시키는 외양간은 40,000개였다고 한다. 

 

 . 애굽과의 관계 

 

 솔로몬왕이 특히 중점적으로 추진 한 정책이 외교와 교역이었다. 애굽은 인접 대국인 동시에 예로 부터 경제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였기 때문에 솔로몬왕은 애굽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바로의 딸이었다. “바로는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다”고 한다.(왕상9:16) 송형철에 의하면, 바로는 애굽의 제21왕조 수센네스Ⅱ세를 말하며, 1940 2월 영국인 고고학자 브리스테드(Breasted)는 애굽 황실 무덤을 발굴하여 석관을 열고 조사한 결과 제21왕조의 마지막 바로 수센네스Ⅱ세는 나약하게 보였으며, 아몬 신 대사장 겸 왕이였다. 

  

. 레바논과의 관계 

 

 다윗왕 시절부터 성전 건축용 자재와 기타교역으로 우호적 관계였으며, 솔로몬왕에게 성전과 왕궁건축을 위한 자재와 숙련공 및 금 120 탈란트를 제공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였다. 건축 자재인 목재들은 바다를 통해 뗏목으로 들여왔으며, 그 대가로 농산물을 “밀 20,000 고르, 기름 20 고르를 매년 주었다”고 한다.(왕상5:7-11) 그리고 솔로몬은 레바논 히람과 외교관계 협정을 맺고, 이스라엘 노동자를 30,000(1개월에 10,000명씩 교대)을 파견하여 필요한 일을 시켰다.(왕상5:12-14) 히람왕은 이스라엘의 성전 건축에 필요한 일꾼을 보냈는데, 감독관 3,300, 돌을 캐는 자 80,000, 짐을 나르는 일꾼 70,000명을 보내주어 성전 건축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솔로몬왕은 레바논의 히람왕에게 감사의 표시로 성전 건축을 마치고 갈릴리 땅의 성읍 20개를 히람에게 주었다고 한다.(왕상9:11) 

 레바논은 애굽 고대 피라미드 시대(3-6왕조)부터 해상교역이 활발한 나라였다. 레바논은 다윗왕의 통치 능력과 권세에 눌려 이스라엘에 협력했고, 솔로몬왕 때에는 동맹국으로서 상선 건조, 건축자재 및 숙련공을 제공하는 등 외교적 협력이 활발했다.  

 

. 영토의 분열 

 

①반란의 발생 

 

아도니야는 다윗의 둘째 아들로서 배다른 형제였다. 그는 요압 장군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공모하였지만, 또 다른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아비아달을 지지하지 않았다. 아도니야는 소헬렛이라는 곳에서 솔로몬을 제외한 다른 왕자들을 초청하고, 다윗왕의 신하 중 유다 지파의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열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기 위해 사전에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이를 눈치 챈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가 다윗왕에게 간절히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간청하는 바람에 아도니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다윗왕은 솔로몬을 왕으로 앉히게 된다.  

 얼마 후 다윗왕이 죽고 나서 아도니야는 밧세바를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는데, 다윗왕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에게 줄 수 있도록 솔로몬왕에게 허락을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솔로몬왕이 다윗왕의 여자를 아도니야에게 취하게 해주게 되면 모든 백성들이 아도니야가 정권을 잡은 줄로 알게 하고, 모반을 꾀하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밧세바는 이런 음모를 모르고, 아들 솔로몬에게 아도니야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이야기하게 된다. 지혜의 솔로몬왕은 아도니야의 음모를 눈치채고 그를 체포하여, 처형하고 말았다. 그리고 솔로몬 왕위의 계승 반역사건에 가담한 아비아달 제사장을 폐하여 아나돗으로 추방하고, 아도니야의 반란 동조자 요압장군도 처형했다. 그리고 다윗왕 통치 말엽 압살롬 반란 당시 다윗왕에게 저주한 시므이도 처형하는 등 궁내세력을 모두 제거했다. 시므이 경우는 처음에는 처형하지 않고, 가택연금을 명했으나 3년후 시므이는 이를 어기고 가드에 몰래 갔다가 발각되어 처형되고 만다.   

 

②과도한 조직운영 

 

 솔로몬은 중요지역에 곳 곳의 축성과 제련소, 예루살렘 성내의 공공건물, 왕궁을 건축했다. 솔로몬왕은 거대한 왕궁을 짓게 된다. 백향목 기둥으로 궁을 건축하여 무기고로 사용했다.(왕상10:16-17) 그리고 법정 궁을 건축하여 그 곳에 여섯 층계를 만들고, 그 위에 상아와 금으로 만든 보좌를 건축했다. 그 외에도 왕후들을 위한 건물을 세웠으며, 이 모든 왕궁 건물은 13년이라는 장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도 이 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왕상10;20) 

 솔로몬왕의 보좌의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곁에는 사자 상이 있고, 여섯 층의 계단 좌우편에 12 지파를 상징하는 사자 상이 하나씩 서 있었으며, 솔로몬이 사용한 그릇은 금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솔로몬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 모습도 정말 찬란한 모습이었다. 왕궁에서 사용한 하루의 식사는 “가는 밀가루가 30 고르, 굵은 밀가루 60 고르, 살찐 소가 10 마리, 초장의 소가 20 마리, 양이 100 마리, 그 외 사슴, 노루, 새 등이었다.  

 솔로몬은 조직체계를 정비했다. 그리고 솔로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협력했거나 친분이 있던 자들을 등용하기 시작했는데, 제사장으로는 사독과 아들 아사리아, 아비아달, 아붓을 등용했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군 사령관으로 임명했고, 서기관(비서관)은 엘리호렙과 아히야를 임명했으며, 나단의 아들 아사리야는 지방 행정 총 책임자로, 왕궁책임자로는 아히살, 노동감독관(노동부장관)은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을 임명하게 된다. 그리고 12개의 지방 행정기관에 관장을 임명했다. 지방관장은 왕과 왕실이 필요한 식량을 매월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열상4:1-7) 또한 각 중요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의 식량도 공급했다.   

 

③솔로몬왕의 범죄와 선지자 아히야의 경고 

 

 솔로몬왕은 바로의 딸 외에도 이방의 많은 여인과 사랑을 했다. 후궁은 700, 첩은 300명이었으며, 모압, 압몬, 에돔, 시돈 여인이었다고 한다. 솔로몬왕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렸지만 오히려 이방 여자들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이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잘못한 것은 이방 여인과 통혼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 여인과 통혼하지 말라는 의미는 이방 신을 믿는 것 때문이었다. 만일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는 경우는 좀 달라질 것이다. 사사시대에 룻기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 보면 무조건 반대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아스다롯, 그모스, 몰록의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두 가지의 징계를 내셨다. 첫째, 솔로몬의 대적이 일어나도록 하여 솔로몬을 괴롭히게 하신 것이다. 대적의 하나는 에돔 사람 하닷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바 사람 르손이었다. 하닷은 다윗왕때 요압장군이 에돔을 칠 때 모조리 다 죽였는데, 작은 아이였기 때문에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애굽으로 도망한 후 바로의 눈에 들어 바로의 처제를 아내로 삼도록 하여 바로의 보호를 받다가 에돔으로 돌아가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이다. 르손은 다윗이 소바 사람을 멸할 때, 피신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다. 

 둘째,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 대적이 될 것을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둘로 찢어버리시겠다고 하셨다.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지나갈 때에 길에서 아히야 선지자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더라.” 그는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찢어 12 조각을 내어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10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빼앗아 찢어 열 지파를 네게 주고, 내종 다윗을 위하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이는 그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러나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열상11:29-35) 이 사실을 솔로몬이 알게 되고,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지만 여로보암은 애굽 왕 시삭에게로 도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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