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국가 분열시대
14. 국가 분열시대
A.
북이스라엘
가. 여로보암 왕조
(1) 여로보암왕 (주전931-909)
여로보암이 왕으로 즉위한 때에는 주전 931년이었으며, 22 년간 북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수도를 세겜으로 하고, 요단 동편지역 브니엘을 재건하여 요새화하였다. 통치 5년째 애굽 시삭이 남 유다를 침략했는데, 이어서 북 이스라엘도 공격했다. 이때 여로보암은 시삭이 과거 자신을
보호해 주었으므로 안심하고 있던 차에 많은 피해를 당했다. 시삭의 공격의 목표는 메소포타미아로 가는
무역로를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① 금송아지 제단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의 2곳에 성전을 두고 그룹(천사)대신
금 송아지를 두어 예배하도록 했다.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제사일과 절기를 바꾸었다.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의 가나안 종교
바알을 믿는 가나안족들과 융화되는 정책의 하나로 금 송아지를 세웠다. 하나님의 사람(이름없음)은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아라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루리라”고 하셨느니라(왕상13:2) 이
예언은 요시아의 개혁정책으로 성취되었다.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죄로 그의 아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네 발이 성읍에 들어 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왕상14:12) 여로보암의 아내가 이 말을 듣고, 디르사의 집으로 돌아와 문지방에 이르자 아들 아비야가 죽고 만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외칠 때, 여로보암이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려고 하니, 손이 말라버리고, 제단이 갈라지면서 재가 제단에 쏟아졌다. 여로보암이 무서워 하나님 사람에게 간구하니 손이 다시 성하도록 해 주었다.
②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림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초청하여
대접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그 집에 가서 대접을 받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대접을 받아버렸던 것이다. 그가 길을 가던 중 하나님이
사자를 출현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을 죽여버린다. 즉,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매수한 것이다. 늙은 선지자가 그 시체를 치우면서 슬피울면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산당을 향하여 “자신이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묻어달라는 요구”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낸 사자와 하나님의 사람이 탔던 나귀는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였을 것이다. 당시의 정황으로
봐서 여로보암은 종교의 질서를 파괴하고, 우상숭배를 자행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와 혼합하는 등 자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2중적인 모습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와 하나님의 사람이 탔던 나귀가 서로 같이 않아있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은 두 가지의 징계를 내리셨다. 하나는
여로보암의 아들을 죽게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로보암의 왕조에 대한 심판이었다.
(2) 나답왕 (주전910-909)
나답왕은 여로보암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2년간 통치했다. 잇사갈 족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반역을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왕을 찬탈하게 된다. 나답이 게셀의 서부 지역 블레셋의 요새인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싸우고
있을 때, 바아사가 반역하여 나답을 죽이고 디르사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고 한다.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이 혼합 종교를 했던
것처럼 그대로 행했다. “그가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왕상15:26)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나답이 죽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대로 된 것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다.(왕상15:29)
나. 바아사 왕조
(1) 바아사왕 (주전909-886)
바아사는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어 24년을 통치했다. 그는 여로보암의 혈통을 완전히 제거하고, 북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통치하면서 남 유다의 아사왕과
싸웠다고 한다. 먼저 베냐민 지파의 라마지역을 점령하고, 그
곳에 성을 건축하여 국경의 요새로 만들어 남 유다 공격을 시도했지만 남 유다왕국 아사왕이 아람왕(벤하닷)에게 군사지원 요청을 하는 바람에 아람 군대가 오히려 북 이스라엘을 치게 되어 퇴각하고 말았다.
바아사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왕상15:34)라고 말하고 있다. 여로보암과 같이 그대로 악을 답습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선지자 하나니의
아들(예후)을 통하여 심판을 선언했다. 예후가 바아사에게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하리니, 바아사에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 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 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왕상16:2-4)
(2) 엘라왕 (주전 886-885)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왕이 되어 2년간 통치했다. 엘라왕은 2년째
되던 해에 부하에게 암살당했는데, 궁내 대신 시므리였다. 엘라왕은
블레셋 점령하에 있던 깁브온을 되찾기 위해 군대 장관 오므리를 출정시킨 상태였는데, 엘라왕은 궁내대신
시므리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므리의 반역으로 죽고 말았다. 시므리는 엘라왕의 모든 일족을 제거해
버렸다.
이는 선지자 하나니의 아들(예후)을 통하여 바아사의 온 집안을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또한 바아사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엘람왕도 역시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왕의 죄 때문이다.(왕상16:13)
다. 시므리 왕조(주전 885년)
시므리는 엘라왕을 암살하고 왕이 되었지만 7일 만에 축출되는데, 엘라왕의 부하였던 오므리 장군이 시므리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에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디르사로 올라가서 왕궁을 포위하고 시므리를 잡으려했으나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시므리는 바아사 왕조는 아니지만 7일간 통치했으므로 이 정도에서
정리를 한다.
라. 오므리왕조
(1) 오므리왕 (주전 885-841)
시므리왕이 불에 타 죽자 북 이스라엘에는
정권을 둘러싸고 양분되고 말았는데, 기낫의 아들 디브니 파와 오므리 파였다. 디브니와 오므리는 6년간 공동 지도체제를 갖게 된다. 그리고 6년 후 오므리가 왕이 되었고,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겼다. 그리고 요새를 건축하고, 요새 안에 왕궁과 각종 부속 건물을 지은 후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 무역과 군사동맹을 추진하였다. 두로와 시돈의 엣바알과 조약을 맺었으며, 이 조약에 근거해서 그의 아들 아합과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을 결혼시키면서 정책 혼사를 했는데, 이는 레바논으로부터 백향목을 얻고, 해상 페니키아로부터 각종 물자를
수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므리왕은 그들의 헛된 것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켰다.(열상16:26) 그들의 헛된 것들은 바알과 아세라였다. 오므리왕은 하나님을 떠나 헛된 것을 섬겼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왕의 아들 아합과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서 우상을 믿는 것이 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아합왕(주전874-853)
아합은 오므리왕의 아들로서 22년간 통치했다. 그는 왕이 되기
2년 전부터 아버지로부터 통치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건축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시리아 지역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궁전 근처에 위치한 건축물들의 벽은 흰 대리석으로 덮혀 상아의 모습을 했고, 벽과 가구를 장식하기 위해 200개 이상의 상아를 장식했다고 한다.
아합왕은 여러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북 이스라엘에
유리한 동맹정책을 편다. 아버지 오므리가 맺었던 시돈에 대해서는 동맹관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남 유다왕국(여호사밧왕)에
대해서도 동맹관계를 맺어 평화를 유지했다.
아합왕은 아람국(벤하닷왕)과 세 차례 전쟁을 했고,
앗시리아(살만아셀Ⅲ세)와도 전쟁을 했다. 앗시리와의 전쟁은 최초의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서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아람 왕국과의 1-2차 전쟁은 아람 왕국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는데, 1차 전쟁은 공물과 아합의 아내와 자식을 요구하면서 사마리아를 포위했다. 이때
아람왕은 승리를 장담하며, 진의 장막에서 술을 마시면서 축제를 벌였는데, 갑자기 아합왕이 그의 군대를 이끌고 장막을 쳐서 크게 이기게 된다.(왕상20:1-21)
2차 전쟁은 아람 왕국이 군대를 재 정비하여
쳐 들어와, 요단 동편 아벡 평원에서 진을 쳤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에 있으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이길 것으로 믿었다. 군대의 숫자가 아람 왕국이 월등히
많았다.(왕상20:27)
그러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다, 아합왕은 조약을 체결하여, 벤하닷을 살려주는 관용을 베풀어준 것이다. 그런데 한 선지자가 어리섞은 짓을 했다고 꾸짖었다.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왕상20:42) 아합왕이 벤하닷을 살려준 것은 앗시리아의 공격에 대비하여 벤하닷을 동맹관계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3차 전쟁은 아합이 2차 전쟁에서 맺은 조약을 스스로 파기해버렸다. 전에 아람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다시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패전하고 말았다.
아합왕은 이방 여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했다. 이세벨을 위해 사마리아에 바알 신당을 짓고 단을 쌓았다.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그들의 선지자들을 공인된 지위를 부여했으며(왕상18:19), 하나님의 선지자를 박해했고, 살해까지 했다.(왕상18:4)
그리고 기근을 주제로 엘리야가 바알과 정면으로
대결하게 된다. 두 번째 행동은 가뭄이 끝날 무렵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총 850명에게 도전장을 던지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자 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제의 의식을 해도 응답이 없자,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해서 피를 흘리게하고, 춤을 추며, 바알을
불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단을 쌓고, 4개의
통에 물을 가득 채워 번제물과 나무 위에 세 번 붓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불이 내려 번제물과 돌과 흙을
태워버렸다.
아합왕이 아람과 3차 전쟁에서 남 유다왕 여호사밧과 같이 싸우자고 제안했는데, 동의를
얻게 된다. 싸우기 전에 선지자들에게 물어보는데, 아합은
자신의 선지자 400명에게 물어보니 승리할 것이라 했다. 한
영이 나타나서 400명의 선지자를 거짓말 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여호사밧도 미가야라는 선지자에게 물어보니 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400명의 선지자 중 시드기야라는 자가 선지자 미가야의 뺨을 때렸는데, 미가야는 시드기야의
죽음에 대한 저주를 했다.(왕상22:24-25) 아합 역시
선지자 미가야를 옥에 가두어버린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는데 아합은 왕복을 벗고 출정했고,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출정했다. 그런데 아합왕은 아람 군의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고 부상을 당해 전사해버리고 만다. 이스라엘 군은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대로
크게 패하고 남 유다 여호사밧도 예루살렘으로 피신해버렸다.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가 말한 것을 통해서
첫째, 예후가 나라를 심판하고, 둘째, 아람 왕국 하사엘왕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셋째,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 나라를 심판할 것을 예고하셨다.(왕상19:5-18)
(3) 아하시야왕 (주전853-852)
아하시아왕은 아합의 아들로서 2년간 통치했는데, 자식이 없었으므로 동생 여호람에게 왕위가 넘어가게 되었다. 아하시아왕은
남 유다 왕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여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 에시온 게벨에서 배를 건조하여 다시스와 무역을
시도했다. 아합왕이 죽자 북 이스라엘이 지배했던 속국들이 독립을 시도했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모압이었다. 모압은 공물바치는 것을 중단하게 된다. 전쟁은 다음 왕까지 이어졌다.
아하시야는 하나님보다 바알세붑을 더 신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머니 이세벨이 섬겼던 바알-멜가트를 숭배하였다는
의미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여호와를
노하게 하였다.”(왕상22:52-53)
아하시아는 통치한지 2년째 어느 날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드는데, 병이 나을지 유무를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신하를 보내어 물어보게 된다. 이 사실이 선지자 엘리야에게 들어가게 되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왕에게 알리게 되는데,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다.
아하시아왕은 신하를 통해 엘리야가 말한 것을
듣고, 군대를 동원하여 오십부장을 세번이나 산에 있는 선지자 엘리야를 잡아오도록 보내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오십부장은 부하 50명을 데리고 갔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두번이나 50명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세번 째 선지자 엘리야를 잡으러 갔던 오십부장이 두려워떠니, 엘리야가
“두려워말라”고 하고는 함께 왕에게 나아가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계시냐. 네가
죽으리라”(왕하1:16)라고 말하였고, 아하시야는 죽고 말았다.
(4) 여호람왕 (주전 852-841년)
여호람왕은 아합왕의 아들이며 아하시아왕의
동생이었고 12년 간 나라를 다스렸다. 여호람왕의 정치에
대해서는 상세한 내용이 없으나 대부분 전쟁과 관계되는 것이다. 모압 왕국, 아람 왕국(3차례전쟁)과의
전쟁이 있었다.
여호람왕은 남 유다 여호사밧왕과 동맹군을
편성하여 모압과 싸우고 있었는데, 물도 없이 7일간 에돔
광야를 진군하고 있었고, 서로 지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돔왕의 요청으로 휴전 협상을 하게되는데, 여호람왕과 여호사밧왕이 엘리사에게 여쭈어 보았다.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군사들이
판 마른 개천에 물이 흐르게 하여 군사들과 생축들로 하여금 물을 마시게 하고, 그 다음 모압의 군대를
쳐부수어 승리를 가져 오겠다”고 했다. 모압 군들이 흐르는 강에서 물을 피로 보았던 것이다.
모압 군들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연합군들이
서로 싸운 것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 군을 공격했는데, 오히려
연합군에 패배하고 말았다. 전쟁에서 패한 모압왕은 자기를 계승할 아들을 번제로 드렸는데(왕하3:27) 이스라엘 군사들이 크게 격노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아람 왕국과의 전쟁은 세 번 있었는데, 첫번 째는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여호람왕을 죽이려 했지만 엘리사가 이 사실을 알려주어 실패를 했으며, 아람왕이 엘리사의 짓인 줄 알고 선지자 엘리사를 죽이려 했다. 하나님은
불 말과 불 병거로 보호하고, 적군들이 눈을 보지 못하게 하여 10마일이나
떨어진 사마리아로 적군들을 인도했다. 그리고 선지자 엘리사는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어 화평하도록 하고
퇴각하도록 했다.
두 번째 싸움도 벤하닷에서 전투를 시작했는데, 아람군이 사마리아를 포위하는 바람에 식량이 다 떨어져 여인들이 아이를 삶아 먹는 비 인간적인 행위들이 나타나서
이 원인을 선지자 엘리사에게 돌리면서 비난하고, 죽이려고 군사를 보내게 되었다.
엘리사는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 온 신하에게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라고 말하면서 전쟁이 끝나고, 회복 될 것이라고 했는데, 왕의 신하는 오히려 비웃었다.
저녁이 되어 나병환자 4명이 아람 군에 항복하러 성밖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고, 식량들만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날 저녁 아람 군대에게 엄청난 병거 소리, 큰
군대 소리를 듣게하며, 이스라엘이 헷, 애굽과 연합하여 쳐들어
온 줄 알고 도망 간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백성들이 식량을 얻기 위해 아람 진영으로 급히
나갔는데, 엘리사를 비웃었던 왕의 신하가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어버렸다.
여호람왕은 어머니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 주상을
깨뜨려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적 혼합 정책은 유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왕하3:2)
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합왕 때 예후라는 사람이 나라를 징계하겠다고
예언하셨는데, 이러한 예언은 엘리사를 통해 이어졌던 것이다.
여호람왕이 아람 왕국 하사엘왕과의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이스르엘에 내려와서 병을 치료하고 있던 중 엘리사는 자신의 생도 한 명을 시켜 길르앗 라못에 가서 예후에게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붓게 했다. 이 일 후 예후는 곧바로 이스르엘로 내려갔고, 도망가는
여호람왕을 활로 쏘아 죽이고, 나봇의 포도밭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이스르엘에 있던 이세벨을 그녀의 종들로 하여금 창문에서 떨어뜨려 죽게 했다. 엘리야의 예언대로 시체에
굶주린 개들이 먹었다고 한다.
마. 예후왕조
(1) 예후왕 (주전841-814)
북 이스라엘 여호람왕은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왔는데, 예후가
이스르엘로 내려와 여호람왕을 살해하고, 동맹관계였던 남 유다왕국 아하시아왕도 므깃도까지 추격하여 살해했다. 예후는 다시 이스르엘로 돌아와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창문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그리고 여호람왕의 형제들 70명을 죽이고, 궁정
관리, 바알 선지자, 제사장까지 모두 살해했다. 그리고 남 유다 왕국의 왕족 40 여명까지 살해했던 것이다. 예후는 엘리사의 생도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즉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사마리아에서 28 년간 통치하였다.
예후가 앗시리아의 살만에셀Ⅲ세에게 위협을
느끼고 조공을 바쳤다는 것에 대해서 김경수는 성경에는 언급이 없지만 1840년 니므롯에서 레야드(Sir, Henry Layard)에 의해 발견된 살만에셀Ⅲ세의 기념비(대영박물관에
소장)에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주전 853년 칼칼(QarQar)전투에서 전세를 회복한 살만에셀은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여 예후왕을 굴복시켰으며, 예후는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
예후왕 통치 초기 아람 왕국과 전쟁이 발생했는데, 아람 왕국 하사엘왕은 이스라엘 세지파(므낫세, 각, 르우벤)의 영토를
포함한 요단 동편을 점령했으며,(암1:3) 예후왕은 아람
왕국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이후 하사엘왕은 요단 서쪽도 점령하게 된다.
여호람왕의 징계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후를 도구로 이용했는데, 선지자
엘리사가 제자 중 하나를 불러 길르앗 라못으로 가도록 하여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가서 기름을 붓도록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라고 말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해 버렸다.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 등 잘못한 것이
있을 때에는 주변 왕국으로부터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을 치시거나 부하 중 하나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여 새로운 왕을 세우셨다. 따라서 선한 왕이던 악한 왕이던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며, 선한
왕은 선대의 선한 왕의 행실로 축복을 받은 것이며, 악한 왕은 선대의 악한 왕의 행실을 징계하기 위해
도구로 쓰심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종교 지도자들의
악행이었다. 예후는 바알을 신봉했던 바알 선지자, 제사장들을 살해하기 위하여
바알을 위한 대 집회를 열겠다고 속여, 사마리아에 있던 바알의 신당에 그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대 집회에는 바알 선지자, 종교 지도자와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가담시켰는데, 예후는 여호나답을 가담시켜,
종교적 혁명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왕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예후는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예복을
입히고, 자신도 여호나답과 함께 바알의 당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 것 처럼 하여 그들을 안심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신당에서 제사장이 바알에게 제사를 하고 있던 중 예후가 밖에서 대기하던 호위병(80명)들에게 모두 죽이라는 신호를 했고, 그들은 신당에 들어가 바알을 신봉하던 자들을 죽이고 목상을 불태우고 바알의 신당을 공중변소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가문에 다 행하였은 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4대를 지내리라 하셨다. 예후는 전심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는데, 과거 여로보암왕이 행했던 금송아지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람 왕국 하사엘이 북 이스라엘을 공격하도록 하였고, 이스라엘은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2) 여호아하스왕 (주전814-798년)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예후에
이어 왕이 되어 17년간 통치했다. 그리고 여호아하스왕은
아람 왕국과 2차례 전쟁을 하게된다. 첫번 째 침략에서 앗시리아의
아닷니라리Ⅲ세가 군대를 이끌고 아람 왕국을 침략하는 바람에 실패한다. 그런데 2차 침략에서는 이스라엘 군대를 장악하여 그의 통치 아래에 두게 된다. 아람
왕국 벤하닷왕은 이스라엘 여호아하스왕에게 마병50, 병거 10승, 보병 1만명 외에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철저히 감시했다.
여호아하스왕은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두어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을 그대로 두는 잘못을 짓게된다. 하나님은 아람 왕국 벤하닷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징계하셨다.
(3) 여호아스왕 (주전 798-782년)
여호아스왕은 요아스라고도 하는데, 여호아하스왕의 아들로서 16 년간 통치했다. 여호아스왕은 선지자 엘리사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엘리사가 나이가
들어 죽을 병이 들었는데,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송형철에 의하면, 앗시리아의 아닷 니나리Ⅲ세(주전811-783)는
지중해 연안국들을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1967년 텔 알 리마에서 기념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문에서 특별히 흥미를 주는 것은 “사마리아”의 여호아스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에 관한
기록이다. 이 비석에는 마리(Mari'), 다메섹의 비르하닷(Bir-Hadad)Ⅲ세 그리고 두로와 시돈 왕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람 왕국 벤하닷Ⅱ세는 앗시리아가 후퇴하자
말자 생긴 정치적 공백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했는데, 이 전쟁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방어 전쟁의
성격을 띄고 있었는데, 여호아스왕은 오히려 이전에 아버지 여호아하스가 빼앗겼던 모든 성읍들을 회복하였다.
김경수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아람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것은 앗시리아가 주전 805년
아람을 다시 침공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이 전쟁에서 전력을 모두 소모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은
이후 50 년간 유프라테스 너머로부터 침공을 걱정안해도 되었다고 분석했다.
유다 왕국 아마샤왕이 북 이스라엘을 공격했는데, 여호아스왕은 아마샤왕에게 철군하도록 경고했지만 아마샤왕은 이를 거절했다. 여호아스왕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성벽을 파괴하고, 왕궁의 보물을 약탈했으며, 유다
왕실 지도자들을 포로로 잡아 사마리아로 끌고 갔다. 그리고 아마샤왕도 포로가 되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호아스왕은 악을 행하여
죄에서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여호아스의 아버지
여호아하스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은 괴롭혔으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쫒아내지 아니 하였더라
아람 왕국 하사엘왕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외 아들 여호아스왕이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호아스왕이 범죄하였지만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은혜를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엘리사에 대한 관계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엘리사가 나이가 들어 죽을 병이 들었을 때
여호아스왕이 직접 문병을 가서 슬퍼했던 것을 보게 된다. 선지자 엘리사가 왕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하고, 동쪽 창을 통해 쏘도록 했다.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하니라
그리고 계속 엘리사는 왕에게 화살을 집어
땅을 치도록 했는데, 왕은 세번 치고 그만 두었다. 이에
엘리사는 노하여 이르기를 “대여섯 번 쳤으면 왕이 아람 왕국을 진멸하였을 것인데, 왕이 세번 만 칠
것이라”고 하였다.(왕하13:14-19)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여호아스왕이 스스로 거두었던 것이다.
(4) 여로보암Ⅱ세 (주전 793-753년)
여로보암Ⅱ세는 여호아스의 아들로서 41 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41 년간의 통치는 섭정과 단독의
통치를 합한 기간이었다. 여로보암Ⅱ세는 남 유다 아마샤왕이 침략했을 때 아버지 여호아스왕에 의해 섭정왕으로
지명되었다. 섭정기간은 12년이었고, 그의 단독 통치는 29년이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치보다는 권력자와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했으며, 이스라엘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재판하고, 자신의 이득을 취했다.(암5:10-12)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져 갔다.
그는 예후왕조 중에서 가장 유능한 왕이었다. 그는 영토를 확장시켰으며, 대외 무역도 번성했다. 페니키아의 상업경제와 문화적인 접촉을 이 루었으며, 요단 동편 지방을
정복함으로서 아람 왕국으로부터의 교역로와 아라비아로 부터의 대상로를 장악했다.
여로보암Ⅱ세는 영토를 확대했는데,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를 통해 말씀하신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왕하14:25) 라고
언급되고 있는데, “하맛어귀”는 솔로몬왕 시절에 최북단 국경지대였으며,
다메섹과 시돈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헤르몬 산 사이의 길을 가리킨다. 즉, 다윗과 솔로몬왕 시대의 영토를 회복한 것이다. “아라바 바다”는
요단 계곡으로부터 아카바 만의 저지대 사막을 포함하여 사해까지 이른다.
여로보암Ⅱ세가 이토록 넓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김경수는
첫째, 아닷 니라리Ⅲ세의 공격으로 다메섹이 쇠약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여호아스와 여로보암Ⅱ세가 영토 확장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점, 셋째, 앗시리아의 내부 분열, 연약한
통치자의 계승 등으로 쇠약한 시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여호아스왕 마지막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 나라로 부터 많은 고통을 당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다메섹, 가사, 아스돗, 두로, 에돔, 암몬, 랍바, 유다왕국
등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에 대해 벌을 내리셨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여호아하스(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 이었더라”(열하14:26-27)
종교나 문화를 다른 나라에 전한 사실을 보면
전하는 나라의 국력이 부강하여 상대 나라에 영향력을 미친 때이다. 여로보암Ⅱ세 때 하나님은 앗시리아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부강케 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지 않으시게 하기 위함이었다.(왕하14:26-27)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만 구원하시고 이방은
멸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한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4:9-11) 선지자 요나는 앗시리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앗시리아는 수 많은 우상을 섬기는 니느웨 도성을 회개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스로 도망을 했다. 요나가 탄 큰 상선을 파선케 하는 동풍의 위력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였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를 삼일 물고기 배속에 가둔
후 또 다시 그에게 사명을 주셨다. 그 때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니느웨에 이르렀다.(요나3:1-2)
쿠걸에 의하면,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는데, 큰 물고기의 의미는 하나님의 초 자연적인
능력의 한 부분이지만 한 이론에 따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올린 기도가 그 이전 이야기에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요나의 기도는 시편의 많은 기도와 유사한데, 요나는 감사의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요나의 노래는 죽음의 병이나 죽을 고비로
부터 살아남은 개인이 부르는 노래이다. 그 노래의 언어는 일반적으로 매우 은유적인데, “내가 나의 고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깊은 곳에서 외쳤더니, 주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셨습니다. 주께서 바다 속 한 가운데로 나를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러싸고 주님의 모든 파도와 주님의 모든 물결이
내 위를 덮쳤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님 앞에서 쫒겨났을지라도 주님의 성전을 다시 바라 볼 것이다
하셨습니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에워싸고 깊음이 나를 둘러쌌으며, 바다
풀이 내 머리를 휘 감았습니다. 내가 신들의 뿌리까지 내려 갔으며, 땅은
그 빗장들로 나를 영영 가두었지만”(요나2:2-6) 요나서 1장 2절에 의하면 니느웨는 악독했으며, 앗시리아 역사에 의하면 주전 765-759년 경에는 전염병이 만연하여
수 많은 백성이 죽어갔는데, 송형철에 의하면, 주전 763년 6월 15일에는
불길한 징조(그들의 미신), 해가 완전히 가려지는 일식이
있었다고 전한다.
여로보암Ⅱ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섬기는 축제의식(호2:13), 음행의 관습(호4:14)이
있었다. 그리고 송아지 우상을 섬기기도 했다. 여로보암Ⅱ세는
화려한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의 상아 궁들(암3:15), 인상적인
요새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이 극도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도자들도 뇌물을 받거나 연약한 자를 압제하며, 성적 타락이 심각했다. 한 여자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음행을 했으며,(암1:7) 제단도 더렵혔다. 선지자 호세아,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회개의 목소리를 높혔다.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 종교의 타락을 음행으로
비유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와 음란한 자녀들을 취하라, 이는 이 땅이 여호와를 떠나 매우 음란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므로 호세아는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으며, 그 여자가 임신하여 그의 아들을 낳았다.(호1:2-3) 호세아의 결혼은 다른 신들과 창녀 질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 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상징적인 의미의 이름을 줄 것을 명하셨다. 첫번 째 아들은 유혈 쿠테타가 벌어진 이스르엘 골짜기(왕하9-10장)를 따라 이스르엘이라 이름하였다. 두번 째 딸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로루하마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집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호1:6), 세번 째 아들은 로암미로 명명되었다. 이는 “너희가 내 백성이 아니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호1:9)
이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어머니
즉, 의인화 된 하나님의 전 창녀 아내를 꾸짖는다. “너희는
너희 어머니를 고발하여라,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며, 나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로 자기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자기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여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태어나던 때처럼 만들고 그를 광야같이 마른 땅과 같이 되게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다.”(호2:2-3)
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사회적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암3:9-1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추수하기전 3개월을
비를 멈추게 하셨고, 곡식을 마르게 하거나 깜부기로 재앙을 주셨고, 팥중이로
과일을 훼손하게 했으며, 전염병을 보내어 청년들을 죽게하여 코를 찌르게 했으며, 성읍을 무너뜨려 죽게했는데도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다.(암4:4-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패역의 길로 들어서자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다림줄 재앙을 통해서 예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암7:9) 이러한
예언은 아모스가 여로보암Ⅱ세를 반역하게 될 자라고 낙인찍히게 된다. 그러나 아모스의 예언은 여로보암Ⅱ세의
신하였던 살룸의 음모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살룸은 그의 음모가 성공을 거두자 공모자들과 함께 백성들
앞에서 스가랴왕을 공개처형하였다.(왕하15:10)
아모스는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성벽, 즉 몹시 가파른 성벽 곁에
서신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의 손에는 이 성벽이 얼마나 바르고 곧은지 시험하기 위해 쓰일 다림줄이
있었다. 건축자들이 다림줄을 사용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영적 고결성을 확실한 기준으로 재실 것이다. 다림줄은 집을 지을 때 뿐만 아니라 집을 헐어버릴 때에도 쓰임을 성경은 보여준다.
다림줄은 이스라엘의 주변이 아니라 그 한복판에
띄어진다. 산당들이 황폐되고, 성소가 파괴되고, 여호보암의 집이 칼로 베임을 당한 것이다. 산당들은 높은 산에 세워져
우상을 숭배하던 제단이며, 성소들은 원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세운 것들이다. 여기에서는 이스라엘대신 이삭이라는 이름이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5) 스가랴왕 (주전 753년)
여로보암Ⅱ세의 아들 스가랴는 사마리아 성에서 6개월 동안 통치하였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라는 자가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죽고 말았다. 이로서 예후 왕조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예후
왕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내부적으로는 여로보암Ⅱ세 때부터 정치적, 사회적으로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으며, 상층민, 하층민사이에 갈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종교적 갈등과 연계되어 패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왕에 대해서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왕하15:9) 스가랴왕은 여로보암이 세운 송아지 우상을 섬겼으며, 아모스는 여로보암Ⅱ세 때 다림질 환상에서 심판을 선언하셨다. 이러한
예언에 따라 스가랴왕은 신하의 음모에 의해 죽게 되었으며, 예후의 왕조도 결국 끝나고 말았다.
바. 살룸 왕조(주전 752년)
살룸은 야베스의 아들로 예후 왕조의 마지막
왕인 스가랴왕을 살해하고 왕이 되어 1개월을 통치하였다. 그도
역시 군대 장관인 므나헴에게 살해되었다. 너무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정치나 종교에 대해서 언급할 만한
것이 없다. 다만 살룸왕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의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사. 므나헴 왕조
(1) 므나헴왕 (주전 752-742년)
므나헴왕은 살룸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10년간 통치했다. 므나헴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는 앗시리아가 강력한
세력으로 부각하기 시작하였다. 앗시리아왕 디글랏 빌레셋Ⅲ세가 이스라엘을 침공했는데,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했다. 각 부자들에게 특별
세금으로 은 50세겔씩 강제 징수하여 은 1천 달란트를 앗수르
왕에게 바쳤다.(왕하15:19-20) 므나헴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황금 송아지 우상을 숭배했다.
(2) 브가히야왕 (주전 742-740)
므나헴의 아들로서 2년 동안 통치했다. 므나헴이 통치하던 때에 길르앗 지역은 군대 장관
베가가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짧은 기간 두 지역으로 나누어서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황금 송아지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 베가 왕조(주전 752-732년)
베가는 브가히야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라 20년간 통치했는데, 베가는 길르앗을 장악하고 있던 차에 길르앗 사람 50인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다. 베가왕의 외교정책은 앗시리아로 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 유다 왕국 아하스왕이 이스라엘과 아람 왕국 연합국에 의해 공격을
당하자 앗시리아에 원군을 요청하게 되어 앗시리아가 가사를 점령하고, 갈릴리와 요단 동편 지역을 포함한
넓은 지역 또한 정복하여 일부 지역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베가왕의 종교정책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의 죄(황금송아지 우상)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15:28)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역시 우상숭배를 계속 한 것으로 보인다.
자. 호세아 왕조
(1) 호세아왕 (주전 732-723년)
호세아는 베가왕에게 반역하여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9년을 통치했다. 호세아가 왕위에 오르자 앗시리아는
호세아에게 봉신적인 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로부터 금 10
달란트, 은 1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받았다. 그런데 호세아왕이 앗시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애굽의 제22왕조 오소르콘 Ⅳ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미 애굽은 분단된
상태였으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따라서 호세아왕의 독립 선언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의 계기가 된 것이다. 앗수르왕은 공격을 하기 시작하여 3년간
사마리아를 에워쌓았다.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으며,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분산해 두어버렸다.
그리고 앗수르 왕은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어 사마리아를 차지했다.
호세아왕은 여전히 하나님에게 패역하고 우상을
숭배했다. 모든 산 위에와 푸른나무 아래 아세라 상을 세우고 숭배했으며,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며,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격노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을때에도 사마리아에 와서 살고 있었던 이민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몇 사람을 죽이니 앗수르 왕이
제사장 한 사람을 사로 잡아 그 곳으로 보내어 율법을 가르치고 지키게 했는데, 그러나 각기 사람들은
여호와도 경외하고, 민족의 풍습대로 자기 신들도 섬겼다고 한다.
북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선지자들은 예언했다. 아히야,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아모스가 예언한 그 예언들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성취되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어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셨음이니라”(열상14:15),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시리아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깍으시리라”(이사야7:20),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리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에
북에서 부터 기울어졌나이다”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렘1:13-14),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세아13:11)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아모스4:2)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아모스6:14)
B.
남
유다
가. 르호보암왕 (주전 931-913)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로서 41세에 왕이 되어 17년간 통치했다. 르호보암은 세겜이라는 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세겜은 북쪽 지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으로서 남과 북의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쪽 지파들은 르호보암에게 강제
노역과 멍에를 가볍게 해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르호보암왕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제의했는데, 결국 제의를 거절하고 만다.
북쪽 지파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왕상12:16, 대하10:16) 이후 르호보암은 아도람이라는 자를 북쪽
지파에 보내서 화해를 해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르호보암왕은 외적을 방비하기
위해 전 국토에 요새를 만들었다. 베들레헴, 에담, 드고아, 벧술, 소고, 아둘람, 가드, 아얄론, 마레사, 십, 아도라임, 라기스, 헤브론 등 16개
지역에서 행해졌다.(대하11:5-12) 르호보암왕 때 애굽과
북 이스라엘 왕국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애굽은 옛 영광을 찾기
위해 시삭왕은 21년간 통치하면서 상‧하로 분열되었던 애굽을 통일하였고, 비블로스, 페니키아와 아랍 국가들과도 무역을 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자 유다 왕국 예루살렘을 침공하였다. 애굽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하나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아 갔다.(대하12:2-9)
북 이스라엘과도 전쟁을
했는데,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서 18 만명의 군사를
소집하여 북 이스라엘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선지자 스마야의 말씀 때문에 전쟁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베냐민 지파의 경계 지역에서 국경의 문제로 분쟁이 일어났으며, 남북
사이에는 항상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르호보암왕은 백성들이
가나안의 신을 섬기는 것을 묵인했다. 그의 어머니는 암몬 여인이었으며,
그의 아내 마아가가 아세라 여신의 숭배자였다(왕상15:12)
산 위에 그리고 푸른나무 아래에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 르호보암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12:14)
남북이 갈라지면서 북쪽에
있던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북쪽의 산당과 수염소 우상, 송아지 우상을 피해 유다 왕국으로 오겠다는 것을
받아드림으로 삼년 동안 르호보암과 함께 나라를 강성하게 했다. 르호보암이 북 이스라엘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선지자 스마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유다왕국으로 돌아갔다.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여 유다 왕국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였더라(대하12:12)
나. 아비야왕 (주전 913-910)
아비야왕은 르호보암의
아들로서 3년간 단명으로 통치했다. 아비야왕은 아람과의 동맹정책(왕상15:19, 대하16:3)을
폈는데, 여로보암의 북쪽 전선을 뚫기 위함이었다. 그 만큼
유다 왕국은 북 이스라엘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왕과의 전쟁에서 아비야왕은
여로보암에게 4가지의 핵심적인 연설을 했는데,
첫째, 여로보암은 주를 배반하고 난봉과 비류들에 의해서 추종을 받는 반역자일 뿐이며,
다윗의 왕조 만이 여호와의 왕국이라고 했다. 둘째, 다윗의
자손의 손으로서 다스리는 나라 만이 “여호와의 나라”라고 선포하고 있다. 셋째, 제사 문제에 있어서 제의 행위는 예루살렘에서의 제사와 하나님께서 직접 세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 의해 드려진
제사만이 합법적인 제사라는 것이다. 넷째, 아비야왕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아비야왕이 통치하고 있었을
때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왕과의 전쟁에 대해서 남 유다 왕국은 40 만명, 북 이스라엘은 80 만명 이었다고 한다. 전쟁은 벧엘에서 2-3km 떨어진 스마라임 산에서 벌어졌는데, 군사의 숫자를 보면 유다 왕국이 불리하였지만 아비야왕은 여호와의 왕국과 예배의 합법성을 배경으로 전쟁에 임했음을
보여준다.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대하13:12) 라고 경고했다. 북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고 공격을 시작했는데, 수적으로 불리했지만
유다 왕국은 북 이스라엘 군사 50 만명을 전사하게 하고 벧엘과 여사나와 에브론을 정복했다.
아비야왕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야의 일 외에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15:3-5) 아비야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 조상의
덕으로 하나님께서 노를 참으신 것을 보게 된다.
다. 아사왕 (주전 911-870년)
아사왕은 아비야왕의 아들로서 41년간 장기 통치를 했다. 아사왕의 통치 15년에 애굽의 왕 오소르곤Ⅰ세의 부하 구스 사람 세라 장군이 이끄는 대군의 침공이 있었다. 세라의 군사는 구스 사람, 룹 사람(리비아족속) 및 애굽 부족들 100만의
대군과 300승의 병거를 앞 세우고 침공했는데, 당시 아사왕의
군사는 58만 명에 불과했다. 전투는 마레사에서 접전했으며, 아사왕이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유다 군사들은 블레셋 땅 그랄까지
추격하여 애굽의 군사를 진멸함으로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많은 전리품을 노획하고, 주변 블레셋 성읍을 치고, 많은 짐승과 물건을 얻었다.
애굽과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둔 아사왕은 교만해져서 자기 자신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의 통치 16년 째에 북쪽에 있던 바아사 왕국이 유다 왕국을 침공했다. 바아사왕은
예루살렘 북쪽 약 7km 거리인 라마에 성곽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자기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왕래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왕상15:17,
대하16:1)
이 같은 상황에서 아사왕은
아람 왕국 벤하닷왕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벤하닷왕은 바아사왕을 공격했는데, 라마 성곽을 포기하고, 다메섹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사왕은 바아사왕이 라마를 건축하려던 그 돌들을 이용하여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왕상15:20-22, 대상16:4-6)
유다 왕국의 선왕들이
율법을 떠나 여호와께 범죄하면서 이방 우상을 섬긴 것을 아사왕은 과감하게 제거했다. 남색하는 자와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가증한 우상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그것을 찍어 불에 던져버리고, 태후 자리도 폐하여
버렸다.(왕상15:10-15)
아사왕의 종교개혁은 두
차례 있었는데, 1차 개혁은 백성들이 섬기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찍고 태양 모양의 표식을 없앴으며, 또한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지켜 행하게 하였다.(대하14:2-5)
2차 개혁에 대해서 살펴보면 오뎃의 아들 선지자 아사랴는 세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사왕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를 했다. “이르되 아사와 유다, 베냐민의 무리들아 들어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를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15:2)
아사왕은 이 말을 듣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지심을 깨달았다. 그리고 2차
개혁을 착수하는데, 남색하는 자를 쫒아내고,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여호와의 낭실 앞 단을 중수하였다. 아사왕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를 언약하고”(대하15:12) 언약의 갱신의 증거로 여호와를 부르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선포하였다.(대하15:14) 그리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주범인 어머니 마아가를 태후 자리에서 폐하고, 마아가가 섬기던 목상들을 불살라버렸다. 그러나 산당은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채 남아 있었는데, 여전히 이방신을 섬기는 기회를 남겨두었다고 한다.(대하15:16-17)
아사왕의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에 응답하셔서 아사왕 35년까지 외국의 침략이 없었다고 한다.(대하15:19) 그러나 아사왕이 애굽과의 전쟁에서 아람 왕국에게
원군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 선지자 하나니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음을 비난했다.
원군을 요청할 때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의 곳간에 남은 은, 금을 모두 취하여 뇌물을 보내는 등 비 신앙적인 모습을 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사왕은 선지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학대를 하게된다. 결국 아사왕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발에 중한 병이 들었는데,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에게 의지하다가 통치 41년 째에 병사하고 말았다.
라. 여호사밧왕 (주전 873-848년)
아사왕의 아들 여호사밧은 25세에 즉위하여 25년간 통치했다.
통치 첫 3년은 아버지 아사왕과 공동으로 통치했다. 아사왕이
발에 중한 병이 들었으므로 부왕을 보좌한 것이다. 그리고 여호사밧의 단독 통치는 22년간 이어졌다.
여호사밧왕은 사회개혁
정책으로 사법제도를 설치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사회 정의에 대한 개혁이었으며, 약자들을 보호하고, 강자들에게 공의를 행하도록 하는 제도였지만, 실제는 법조계의 관습적인 부패를 제거하기 위한 개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호사밧왕은
직접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지까지 순회하면서 백성들에게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촉구하는 한편, 유다
온 나라 “견고한 성”(왕실 관할, 행정 중심지)마다 재판관을 세워 재판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재판할 때 자신의
행위를 삼가고, 재판은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니,
재판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고 당부하였다.(대하19:4-7)
여호사밧왕이 나라가 강해지고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북 이스라엘과의 화평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북이스라엘과 정책혼사를 하게되는데, 여호사밧왕은 아합왕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는다.
여호사밧이 주도하여 북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보니, 오히려 유다왕국에게는 손실이 많았다. 북
이스라엘과 아람 왕국과의 전쟁에서 동맹군으로 참전하여 아합왕이 전사하고 여호사밧왕도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도주하는 참사가 있었고, 아합왕의 아들 아하시아왕과도 경제적 동맹관계를 구축했는데, 여호사밧왕과
아하시아왕은 에시온 게벨에서 배를 짓고 다시스로 보내기로 하였다. 이는 다시스와 무역을 통하여 오빌의
금을 가져오려 했던 것이다.
모압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북 이스라엘 여호람왕과 같이 참전했는데, 연합군은 행군 도중 7일간
물이 없어 온 군사와 짐승이 기갈을 당해 죽음 직전에 이르렀던 것이었다.(왕하3:4-27)
여호사밧왕이 왕위에 있을
때 외세의 침략이 있었다. 모압, 암몬, 마온사람들의 연합군이 엔게디(사해 서쪽)까지 진격해왔다. 여호사밧왕은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여호와의
도우심을 간구했다. 믿음으로 싸운 여호사밧왕은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
후로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나라들이 여호사밧왕에게 예물을 보내기도 했다.(대하17:10-19)
여호사밧왕은 아버지 아사왕의
대를 이어 종교개혁에 착수했는데, 남색하는 자를 색출하여 쫒아내었고,
아세라 목상을 유다에서 제거하는 일을 시작했다.(왕상22:46,
대상17:6) 그리고 그의 방백 5명과 레위사람 9명, 제사장 2명에게
“여호와의 율법 책”을 가지고 평민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다.(대하17:7-9)
여호사밧왕은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선지자 야하시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왕은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으로 행하며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면서 적군을 향해 행진하였다. 이는 찬양의
형식을 갖춘 것이다. 과거 엘리 대제사장 시절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여호와의 법궤를 전쟁의 방패로 삼았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여호와의 구원의 말씀을 믿고 나아갔기 때문에 믿음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찬양의 형식은 사울왕
시대 이전에는 제사장이 먼저 찬양하면 백성들이 화답송으로 따라했으며,(예: 모세가 홍해를 건너고 난 후의 미리암의 노래 등) 그 이후에서 보듯이
형식을 갖추기 시작하였으나(대상25:1-31) 초대 교회에서는
공식적 성가대는 없었다고 전한다.(그리이스 알렉산드리아 필로의 증언).
그러나 예수님 승천후 A.D. 313 년에 로마가 밀라노 칙령에 의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성가대가 조직되었고, 이 때는 여성이 참여하지 못하다가 이 후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 성가대를 조직할 때에 혼성으로 조직되었다고 한다.
성경은 다윗왕 때 신령한
노래를 하는 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첫째,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둘째, 아삽, 헤만, 여두둔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셋째,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넷째, 절차에 대하여, 다섯째, 일하는 자의 수효와 직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대상25:1-31)
여호사밧왕은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믿고 싸움으로서 승리를 가져오게 했으며, 하나님의 축복에 너무 감격하여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 하나님을 송축하며, 영광을 돌렸다.(대하20:25-26)
여호사밧왕은 북 이스라엘
아하시아왕과 경제적 동맹관계를 구축하여 에시온 게벨에서 배를 짓고 그 배를
다시스로 보내기로 하였다. 이는 다시스와 무역을 통하여 오빌의 금을 가져오려 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정책이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레사 사람 엘리에셀을 여호사밧왕에게 보내어 악한 아하시아왕과 교제한
것을 책망했다. 그 댓가로 에시온 게벨에서 제조한 배를 파괴시킬 것이라고 선포하게 했다.(대하20:37)
마. 여호람왕 (주전 853-841년)
여호사밧왕의 생존 당시에
그의 아들 여호람이 32세에 왕위에 올랐다. 부왕의 섭정을
받으면서 5년간 통치했다. 따라서 여호람왕의 단독 통치는 7년에 지나지 않는다. 여호람왕은 국내통치를 주로 했으며, 부왕 여호사밧왕은 북 이스라엘과 협력하여 아람 왕국과 대전했다. 여호람왕은
북 이스라엘 아합왕의 딸 아달랴와 결혼을 하여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여호람왕은 단독 통치에
들어가자 그의 6명의 형제와 몇 명의 방백들을 살해했다. 그가
살해한 형제는 부왕 여호사밧왕이 견고한 성읍을 통치하도록 위임한 형제들이었다. 당시 참사는 경쟁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람왕 통치기간 중
유다 왕국에 조공을 받치던 두 나라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에돔과 립나였다. 여호람왕은 반란을 진압하고 복종시키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블레셋과 아라비아 무리들이 유다 왕국을 침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그의 처 아달랴와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를 제외한 모든 후궁과 아들들을
납치해 살해했다. 이같이 유다 왕국의 국세는 점차 쇠약해져 이웃 나라들에 의해 참사를 당했다.
여호람왕의 종교정책은
그의 아내 아달랴의 영향을 받는데, 아달랴는 그녀의 어머니 이세벨로부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이러한 행위를 묵인한 여호람왕에 대해서 악한
행위로 고발하고 있다.(왕하8:18) 그는 산당을 세우고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했으며, 미혹했다.
선지자 엘리야는 여호람왕의
종교정책에 대하여 비난하면서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예루살렘 백성을 음란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의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네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였더라”(대하21:12-15) 이 예언은 이루어졌다. 여호람왕은 병이 들어 2년 후에 창자가 그 배에서 흘러나와 죽었다.
바. 아하시아왕 (주전 841년)
아하시야왕은 여호람왕의
막내 아들로서 그의 여섯 형들이 블레셋과 아라비아 침공 당시 살해되었기 때문에 22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아하시야왕은 북 이스라엘
여호람왕과 함께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왕국과 싸웠으며, 여호람왕이 부상을 입자 이스르엘로 가서 문병하던
중 북 이스라엘의 예후 장군의 공격을 받고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과의 동맹관계는 끝이
나고 말았다.
아하시야왕이 갑자기 죽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위 계승권을 가진 손자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때
아하시야왕의 여동생이 어린 아기였던 요아스를 6년 동안 성전에서 숨겨 키웠다고 한다. 이 같은 참사로 유다왕국의 대는 일시적으로 끊어졌으며, 아달랴는 6년간 유다를 장악하여 통치했는데,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반정으로 아달랴를
축출하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게 되었다.
아하시야왕은 어머니 아달랴의
조정을 받으며, 바알신과 아세라 여신을 섬기고 백성을 범죄하게 했으며,
산당에서 예루살렘 거민으로 하여금 음란한 행위를 강요했는데, 음란한 행위는 아세라 여신에게
행하는 제의로서 일종의 종교행위를 말한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 사위가 되었음이라”(왕하8:27) 예후 장군은 아하시야를 비롯한 그의 친척까지도 살해하여
권력의 공백이 생겼으며, 다윗 왕조가 중단되는 비극이 생겼다.
사. 요아스왕 (주전 835-796년)
요아스가 유다 왕국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는 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섭정을 받았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그의 생존 기간 동안 요아스왕을 성실히 보좌하여 지난 시절 모든 어긋난 제도를 개혁하도록
협력했고, 130세에 죽었다.
요아스왕 때 아람 왕국이
유다를 공격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이 때 유다의 요아스왕은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국 하사엘왕에게 주어 떠나게 했다. 당시 침략으로 요아스왕은 크게 부상을 입었고, 그의 부하 요사갈과 여호사바드가 모반하여 요아스왕을 살해해버렸다. 그들은
요아스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를 죽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왕을 살해한 것이다.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왕은 방백들의 잘못된 조언으로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왕이
우상을 섬기며 범죄하는 것에 대해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아스왕은
스가랴를 죽이도록 계략을 꾸몄고, 성전 뜰안에서 무리들에 의해 스가랴는 돌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요아스왕은 신하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죽었던 것이다.
아. 아마샤왕 (주전 796-767년)
요아스왕의 대를 이어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으로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했다. 그의
통치 5년부터는 아들 웃시야와 공동으로 24년간 통치했으며, 그는 부왕을 죽인 요사갈과 여호사바드를 처형하였다. 아마샤왕은 유다
왕국을 배반한 에돔을 공격하기 위하여 30만 군사를 동원하였다. 아마샤왕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아마샤왕은 북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생각했다. 에돔을 공격할 당시 10만 명의 용병을
고용했으나 그들을 돌려보낸데 대하여 크게 불만을 품고, 그들이 유다 성읍들을 공격하여 3천명을 죽이고 재산을 노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 왕국은 서로
싸웠는데, 북 이스라엘이 유다를 이기게 되었다. 졸지에 아마샤왕은
포로가 되었고, 예루살렘 성곽이 파괴되었으며, 성전 기구와
왕궁의 재물이 약탈되었고, 많은 백성이 사마리아로 끌려갔다. 10년간
포로생활 후 아마샤는 암살을 기도했던 사람들을 피해 탈출하여 라기스로 도망했으나, 무리가 라기스로 가서
아마샤왕을 죽이고 시체를 말에 실어서 장사했다.(왕하14:20, 대하25:27-28)
아마샤왕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으며, 다윗의 행실을 따르지 않았다. 에돔과의 전쟁 때
북 이스라엘로부터 용병을 10만 명 받으려고 했으나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용병과 함께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충고를 받아드린다. 그로 인해 아마샤왕은 에돔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어리섞게도 패전한 에돔 우상을 예루살렘에 가져와 그 앞에 분향하고 경배했다. 아마샤는 그 후에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히게 되었고, 그
곳을 탈출했다가 죽고 말았다. 여호와를 떠난 죄 때문이었다.
자. 웃시야왕 (주전 791-739년)
아마샤왕의 대를 이어
아들 웃시야가 왕이 되어 52년간 장기간 통치했다. 그의
첫 24년은 아버지 아마샤왕과 공동으로 통치했다. 그리고
나머지 28년을 단독으로 통치했는데, 그의 통치 말엽 약 12년 간은 문둥병으로 인해 그의 아들 요담이 섭정 왕으로 공동 통치하게 된다.
웃시야왕은 유다 남쪽 애굽 접경의 에돔을 계속 장악했고, 항구도 건설했다. 그리고 사해 동쪽으로는 암몬 왕국을 다스리면서 조공을 거두어들였고, 아마샤왕때
아람 왕국 하사엘왕에게 빼앗겼던 유다 서쪽 블레셋 가드를 비롯하여 여러 성읍을 탈환하고 통치했다.
웃시야왕은 예루살렘에
저수지와 수로를 건축하고 목축과 영농을 육성했다. 왕은 군대 장관 하나냐를 세워 지도층을 백성가운데서
뽑았고, 사관 2,600 명을 뽑아 군사 307,500 명을 통솔하도록 군대를 재편성했다. 또한 병기를 향상시켜
방패, 창, 투구, 갑옷, 활, 물 맷돌로 무장하고 기능공으로 하여금 활과 투석기를 만들어
배치했다. 특히 왕은 예루살렘 방어를 위해 성곽을 개수하면서 성곽 위에 투석기를 배치했다. 웃시야왕이 이 처럼 국방력이 강대하게 된 이유는 주변나라의 작용도 컸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Ⅱ세
때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아람 왕국은 신흥 앗시리아에 눌려 힘이 약해지게 되었고, 앗시리아 마저 아랄랕의
공격을 받아 그것을 방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바로 이때에 여로보암Ⅱ세는 힘을 얻어 국방력을 키우고
군대를 재정비하여, 마침내 주변 국가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여로보암Ⅱ세의 죽음 이후 북 이스라엘은 내부 분열과 재빠른 왕의 교체로 극히 쇠약해졌다. 이제
앗시리아를 견제할만한 나라는 유다왕국의 웃시야왕 밖에 없었다.
당시 유다의 영토는 서쪽은
블레셋, 동남쪽은 에돔, 애굽까지 영토가 확장되었고, 홍해 아카바 만을 근거로 원양 무역이 성황하고, 농경 목축 및 군비
확장 등 솔로몬왕 이후 처음으로 번영했다. 그동안 침체되었던 앗수르 제국에는 한 장군이 일어나 왕위를
찬탈하고 그의 이름을 디글랏-빌레셋이라 칭하면서 유브리데 강을 건너 중동아시아에 출정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웃시야왕때 유다 왕국은
세 나라와 전쟁을 했는데, 블레셋, 아라비아, 마온이었다. 블레셋에 대해서는 유다 왕국이 먼저 공격해서 가드, 야브네, 아스돗의 성벽을 헐고 아스돗 땅에 성읍들을 건축하고, 여러 곳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였다(대하26:6) 블레셋과의 전쟁은 해안의 간선 도로를 장악하려는 중대한 전략적 목적이 있었다. 웃시야왕은 아라비아의 구르바알을 점령했는데, 이는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온도 공격하여 점령했다.
웃시야왕은 아버지 아마샤왕과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했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했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이방신을 믿지 않았지만 지방의 산당에서는 이방신에게 제사를 했던 것이다.
웃시야왕은 “하나님의
묵시를 잘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26:5) 그러나 웃시야왕은 그의 통치 말년에
제사장에게만 허용된 제사장직을 범함으로서 신성 모독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당시 제사장이었던 아사랴가
제사장 중 용맹한자 80 명을 데리고 따라 들어가 저지하였으나, 웃시야왕은
권력을 이용해 저지하는 제사장들에게 떠나라는 명령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계속 제사행위를 했는데,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려 왕좌에서 물러나 죽기 전까지 별궁에서 거하는 불행을 겪게되었다.(왕하15:4-7, 대하26:16-23)
차. 요담왕 (주전750-731년)
웃시야왕의 죽음으로 그의
아들 요담이 부왕의 섭정을 받던 중 홀로 통치하게 되었다. 그의 통치 중 12년은 아버지 웃시야왕의 섭정기간이었고, 단독으로 16년 간을 통치했다. 요담왕은 웃시야왕의 정책을 이어받아 정직히
통치함으로서 하나님 앞에 선한 왕으로 인정받은 왕 중 네 번째 왕이었다. 아버지 웃시야왕이 다하지 못한
건설 사업을 계속했다. 또한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성읍 곳 곳에 망대를 세우면서 성곽을 수축하고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해 오벨에 성곽을 증축했다.
요담왕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공을 받치도록 했으며, 암몬은 3년 동안, 은 300 달란트, 밀 1 만석, 보리 1 만석을
공물로 바쳤다. 3년 후에는 암몬이 유다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아람 왕국 르신왕과 북
이스라엘 베가왕이 연합하여 유다 왕국과 전쟁을 했다. 아람 왕국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한 이유는 앗시리아를
저지하기 위해서인데, 유다 왕국이 이에 동조를 하지 않자 공격해 온 것이다.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아람 왕국 다메섹으로 끌고 갔다.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의
백성을 포로로 많이 잡아갔는데, 하나님은 선지자 오뎃을 통하여 남 유다 왕국으로 되돌려 보내도록 하셨다. “그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오벳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겨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하고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 형제들 중에서 사로 잡아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대하28:9-11)
요담왕은 여호와의 성전의
윗 문을 건축하는 등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였다. 그러나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다. 백성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향을 불사르는 사악한 행동을 했으며, 이방인과
손잡고 언약을 맺으면서 그들의 풍습을 따라 사악해졌다.(왕하15:35,
대하27:2) 선지자 이사야는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사2:4-9)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치기 위해 몽둥이를 준비하셨는데, 앗시리아 디글랏 빌레셋Ⅲ세가 왕위에 오름으로, 아람 왕국 르신과 북 이스라엘 베가왕은 동맹을 취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어 요담왕이 죽던 해 유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문 앞에 다가왔다. 아람왕국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해왔던 것이다. 이는 유다 왕국이 반 앗시리아 정책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카. 아하스왕 (주전 743-715년)
요담왕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아하스가 28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그의 통치 초엽
아버지 요담왕의 섭정을 받았기 때문에 통치 기간은 16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하스왕의 통치 말년에는 아들 히스기야와 공동으로 통치했으므로 아하스왕의 통치는 3년에 불과했다.
아하스왕의 정책은 친
앗시리아 정책이었는데, 이는 예루살렘 방백들이 앗시리아 제국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보다 복종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단독통치 초엽 아람 왕국 르신과 북 이스라엘 베가왕이 반 앗시리아
동맹을 맺고, 유다 왕국도 앗시리아에 대항하기를 원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하스왕은 앗시리아 디글랏 빌레셀Ⅲ세에게 예물을 보내면서 아람 왕국을 물리쳐주기를 요청했는데, 그 일이 성사되어 다글랏 빌레셋Ⅲ세는 유다 왕국에 출정하여 아람 왕국과 북 이스라엘을 축출해 버렸다. 아람 왕국과 북 이스라엘이 철수하면서 유다 왕국 성읍에 큰 손해를 입히고,
12만 명의 백성을 살육하고 20만 명을 사로잡아 갔으며,
유다 방백을 죽이고, 많은 재물을 노략질 해갔다. 선지자
오뎃의 충고로 북 이스라엘은 포로를 되돌려 보냈다.(대하28:5-15)
유다 왕국이 정계가 혼란해지자
예속되었던 블레셋과 에돔이 일어서서 유다 왕국을 공격해왔다. 이 시기에 에돔은 유다 왕국의 간섭없이
엘랏을 통하여 무역을 하고, 서방으로는 해안 도로와 연결하는 육로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블레셋도 유다를 침략하여 여러 성읍을 취했는데, 아하스왕은 앗시리아
디글랏 빌레셋Ⅲ세에게 구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리어 디글랏 빌레셋에게 군박만 받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대하28:16, 20-21)
아하스왕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가나안의 토착 신의 바알 우상을 만들어 힌놈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자녀를 불살라 몰렉에게
희생제사를 했다.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이방신을 섬기도록 백성들에게 강요했다.(왕하16:4, 대하28:25), 그는
성전의 기명들을 다른 위치로 옮기거나 훼파하였다. 심지어 성전의 문을 폐쇄해 버리는 일까지 자행했다. 아하스왕은 바알뿐만 아니라 다메섹의 신까지도 섬겼다. 앗시리아의
디글랏 빌레셀Ⅲ세의 도움으로 아람 왕국 다메섹을 치고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그 때 아하스왕이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서 단의 우상을 보고 그 것을 본을 떠서 가져와 단을 만들어 제사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과 그로 인해서 그 땅에 닥칠 슬픈 모습들을 묘사했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은 백성들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희생제사에 진력이 났고, 더 이상 그것들을 원하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백성들은 서로에게 커다란 죄를 범했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렵혀졌으며”(이사야59:3) 라고 하면서 피 묻은 손을 언급한 것은 희생 제사의 피가 아니라, 그들이
흘린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의 피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죄와 불의로 가득한 삶을 살았는데, 그리고는 기도와 제사로 하나님께 나아오곤 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도
부패했다. 뇌물을 좋아하고, 행악자들과 어울렸으며, 도와줄 사람을 외면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악한
길에서 그들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의 죄에서 빠져나오도록 명령하셨고,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부패한 제도와 싸울 힘이 없어 압제의 대상이
된 고아와 과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돌이키면 그들에게 주시려고 계획하신 놀라운 축복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씻을 것이며, 그들이 그 땅에서 풍성한 것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명령을 거절하면 칼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인식하도록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첫 번째 단계이고,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은 두 번째 단계이며,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
것은 세 번째 단계라고 설명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아람왕국과
북 이스라엘 동맹에 대해서 그들의 음모가 결코 성공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65년 내에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을 예언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징조를 아하스왕에게 보여준다.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며 그가 선과 악을 택할 줄 알기 전에(사7:16) 즉, “이
아이가 아빠,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아람 왕국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시리아의
것이 되며, 이 아이는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완고한 유다의 왕이 믿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신다. 아하스왕이 징조를 선택하든지간에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징조를 주실 것이다.
베이어에 의하면, “처녀”라는 말에 대해서 다양한 번역의 예가 있다. 처녀로 이해되는
히브리어 알마(‘Almah)는 처녀를 의미하는지, 젊은 여자를 의미하는지 학자들의 설이 구 구하다. 세 가지의 번역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첫째,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둘째, 젊은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셋째, 젊은 여자가 임신 중인데 곧 아들을 낳을 것이다. 첫째의 경우는 이사야의 말씀이 미래에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설,
따라서 이사야가 아하수왕에게 “아하스왕이여 당신은 징조를 선택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징조를 주실 것인데, 정말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를 할 것이고,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놀랍지
않다면 아하스왕이여 무엇이 놀랍겠습니까, 그리고 처녀는 그 아들을 임마누엘이라 지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 놀라운 징조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둘째의 경우는 이사야가 이제 곧 자기
아내 될 약혼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사야는 이미 아들(마할살랄하스바스)이 있었으므로 이 여자는 후처일 가능성이 높으며, 아들이 2-3살 정도되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나이를 지칭하며, 징조는
이미 선언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그리고 노략질이 속히 일어나고 희생이 임박했지만 (마할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이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징조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 젊은 여인은 임신을 했는데, 곧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세 번째의 견해에서 이사야는 아하스왕에게 “아하스왕이여 보십시오, 여인이
임신하여 아이를 출생하려고 하는데, 그녀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지을 겁니다. 다윗 왕조의 일원이며 왕이신 당신은 하나님이 유다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이 여인은 믿습니다”라고
해석한다.
베이어에 의하면, “임마누엘”은 임마누(Immanu)는 “우리와 함께”라는 의미이고, 엘(el)은 하나님을 의미함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하시는 것에 대해서 상황은 앗시리아 군대가 에브라임 땅에 같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 라고 단언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아람
왕국과 북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한 것에 대해서 아하스왕을 책망했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아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디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사7:4-7)
유다 왕들은 다윗의 후손이었다. 사무엘 7장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놀라운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징계하려니와 ....... 그에게서 나의 은총을 빼앗지 아니하리라 ......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2-16) 베이어에 의하면
다윗 자손들에 대한 보호와 돌보심에 대한 약속은 다윗의 후손 아하스왕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됨을 보여준다.
타. 히스기야왕 (주전 728-686년)
히스기야왕은 아하스왕의
아들로서 42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첫 13년은 아버지 아하스왕의 섭정을 받았고, 왕 위에 오를 때 12세였으나 25세가 되어 단독으로 통치를 했다.
어느 날 히스기야왕이
병이 들었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기도 제목은 세 가지였는데, 첫째, 당시 유다 왕국의 어려운 정세 하에서 왕의 아들 므낫세(7-8세)는 어린 아이였으므로 통치에 문제가 되고, 둘째, 앗시리아 왕 산헤립의 위협과 그의 장군 랍사게로 부터 많은
능욕을 받았으며, 셋째, 병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살게 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이사야가 무화가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상처에 놓으니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더 살 수 있는
징표로서 아하스왕의 해 시계 위에 나아갔던 그림자를 십도 물러가게 하셨다.(열하201-11)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을 해주신 것이다. 히스기야왕의 병이 나았을 때 바벨론 왕 므로닥 발라단이 그에게 사자를 보내어 회복된 사실을 축하했다. 그것은 자신이 일으킨 반란에 협력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절단을 통해 축하한 것이었는데, 므로닥 발라단의 반란은 주전 703년에 일어났다. 그러나 바벨론 사신들이 히스기야왕을 찾아온 것은 왕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대하32:31) 히스기야왕은 그들의 의중을 알지 못하고 사절단의 일행을 기쁨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왕궁의 보물과 무기 창고를 다 보여주며 자랑했는데, 그것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는 단초가 된다.
히스기야왕 시절에는 신
앗시리아 제국의 세력이 흥기하기 시작하였다. 유다 왕국을 포함한 중동 지방 모든 나라와 애굽은 앗시리아의
세력권에 들어간 것이다. 히스기야왕은 아하스왕과는 달리 반 앗시리아 정책을 취했으나 그 때까지 앗시리아
왕 사르곤Ⅱ세와는 직접적인 마찰은 없었다. 주전 711년
블레셋 아스돗이 주축이 되어 반 앗시리아 동맹에 히스기야왕도 함께 하도록 요청받았는데, 왕은 거절하였다.
앗시리아 왕 사르곤Ⅱ세는
아스돗에 출정하여 반 앗시리아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 때 애굽 25왕조는
아스돗을 돕기로 약속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유다 왕국은 앗시리아의 공격을 면했다. 이 후 중동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동맹을 맺고 반 앗시리아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두로 왕국이 주동이 되고, 블레셋,
아스글론, 에그론, 유다 왕국이 가담했다. 유다 왕국 히스기야왕은 예루살렘 성곽을 중수하여 요새화하고, 방비를
강화했다.(대하32:1-8) 특히 앗시리아가 물을 쓰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백성의 급수를 위해 기혼 샘으로부터 굴을 파서 물을 끌어드렸다.
앗시리아 제국의 출정
소식에 유다 조정의 강경 파벌은 히스기야왕에게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에 대비하기를 원했는데, 주전 701년 앗시리아 산헤립왕은 중동 지방에 출정했다. 우선 반란을 주도한 도시국가를 맹타했는데, 두로왕은 구브로 섬으로
도망을 갔다. 반란에 가담한 비브로스, 아르왓, 모압, 에돔, 암몬 왕들은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다 왕국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는데, 46개의
유다 성읍이 파괴되고, 20,150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그런
후 앗시리아는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남서쪽 45km 지점의 견고한 라기스를 점령하여 주둔했다. 그 때 히스기야왕은 반 앗시리아 정책의 잘못을 깨닫고 산헤립에게 용서를 구하며 조공을 바칠 것을 제의했지만, 산헤립은 은 300 탈렌트, 금 30 탈렌트를 부과함으로서 히스기야왕은 왕궁에서 금, 은을 취하여
산헤립에게 보내면서 화애를 요구했다. 산헤립은 항복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산헤립은 니느웨로 황급히 퇴각하고 만다.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 멜렉과 사례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왕이
되었다고 한다.
히스기야왕의 종교정책은
네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중단된 성전의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고, 둘째, 유월절을 회복하는 것이었으며, 셋째, 전국적으로 이방 종교와 산당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넷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직분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성결하는 것을 시작으로 성전의 성결, 성전의 재 봉헌, 백성들이
참여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위의 행사 중 성전의 성결은 언약의 갱신으로 묘사한다. 언약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의 시대에서 볼 수 있듯이 “자르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만약 어겼을 때는 쪼개진 송아지처럼 쪼개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렘29:10) 성전에서 히스기야왕은 언약 의식을 통해 아하스왕의 악행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단을
표하고 있다. 히스기야왕은 아하스왕 때 중단된 제사를 드렸다. 제사는
번제와 속죄제로 드렸다. 번제는 제물의 전체를 불살라 드리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속죄제는 희생 제사를 뜻한다.
유월절의 회복은 북 이스라엘에게도
서신을 보내 예루살렘에서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로 권유했다. 그리고 이방 종교와 산당을 타파하는 것에
대해서 가나안화 된 민간 종교의 중심지인 지방의 산당을 타파하는 것이었는데, 아세라 목상을 깨고, 모세가 만든 놋 뱀을 부수어 느후스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제사의 직분과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도록 하였고, 백성들에게는 십일조를 가져와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부양하도록 했다.
히스기야왕이 발병이 나서
바벨론 신하들로 부터 문병을 받고 보물과 무기고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데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진노를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날까지 쌓아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왕하20:17-18)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은 대략 1세기 후인 느부갓네살 Ⅱ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실현되었다.
그러나 주전 701년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히스기야왕의 종교정책이 중단되고 말았다. 앗시리아가
대규모로 공격해 온 것이다. 히스기야왕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방백을 보내어 하나님께 간청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앗시리아 왕은 반드시 고토로 돌아갈 것과 그 곳에서 칼에 죽을 것을 예언했다.(왕하19:1-7, 이사야37:1-7)
그 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앗시리아 진영의 185,000 명의 군사를 쳤다.
히스기야왕 때 국가의
지도자들은 공의롭지 못하고, 착취하고 백성들을 강탈하는 자 들이었다.
의로운 사람들이 피 흘려 모은 재산이 지도자들의 이기적이고 사악한 이익을 공고히 하는데 썼다. 당시
선지자 미가는 거짓 선지자, 제사장, 재판관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지 않음으로서 고의로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여 자기 만족과 육체적인 쾌락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풍성한 음식과 물건들을 바치기만 하면 그들은 계속 국가의 번영과 평화를
예언했다. 이들이 선지자의 거룩한 직무를 모독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임할 재난을 네 가지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캄캄할 것이라”(미가3:6) 선지자 에스겔도 거짓 선지자에 대한 종말을 말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섞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 진저,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니라”(겔13:2-6)
그리고 거짓말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도 경고하며, 예언했다.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있을 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겔13:18)
제사장들은 돈과 수수료를
받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그들이 돈을 받았으므로 공정성이 지켜질 수 없게 되었다. 백성들이 가르침을 받으러가는 곳마다 재판관이든 제사장이든 예언자에게든 공통적으로 만연된 생각이 있었으니 돈을
받는 것이었다. 미가는 그들의 죄 때문에 시온은 밭갈이 쟁기질을 당할 것을 예언했으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고, 모리아(성전의 산)는 울창한 숲이 될 것을 예언했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이 높은 곳이 되리라”(미가3:12) 그리고
미가는 예루살렘 성읍의 완전한 멸망을 예고하고 있다. 이 예언은 선지자 예레미야 26장 18절에 인용되어 있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그리고 느헤미야 2장 17절에는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하고”(느2:17) 라고 하고 있는데, 선지자
미가의 이러한 예언은 그 대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파. 므낫세왕 (주전 697-642년)
히스기야왕의 대를 이어
므낫세왕이 즉위하여 55년간 통치했다. 그는 첫 11년 간은 아버지 히스기야와의 섭정 기간이었고, 그의 단독 통치는 44년 간 이었다. 므낫세왕이 즉위할 무렵 앗시리아 제국이 바벨론
및 애굽을 비롯하여 전체 중동지방을 장악한 때였다.
히스기야왕 때 앗시리아의
산헤립왕은 예루살렘 침략 때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참패를 당하고 니느웨로 돌아가 그의 두 아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는데, 그의 셋째 아들이 왕 위에 올랐다. 산헤립왕이 살해되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앗시리아는 제국을 속국체제로 유지하여 왔기때문에 순간 몰락한듯이 보였다. 그러나 제국의 새왕 에살핫돈이 왕이 되자 반 앗시리아 세력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주전 671년 애굽의 멤피스를 점령하였고, 많은 포로를 잡아갔다.
에살핫돈왕의 다음으로
앗수르바니팔왕은 제국을 튼튼히 하고 잘 유지하면서 둘로 나누어졌던 애굽 중 상부 애굽의 수도 테베를 함락시키고,
애굽을 그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따라서 앗시리아는 마침내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중동 아시아와 애굽은 앗시리아에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리아, 페니키아, 아라비아, 팔레스타인
등 각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특히 앗시리아 남쪽 엘람 왕국의 반란이 있었는데, 앗시리아의 앗술바니팔왕은 엘람 왕국 테우만왕의 목을 잘라 니느웨로 가져와 전시했다고 한다. 앗술바니팔왕이 애굽의 구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귀국하자 애굽의 삼텍Ⅰ세가 테베를 원정하여 상 애굽을 장악하고
정상을 되찾는다. 그는 후기 애굽의 강력한 통치자로 알려져있다. 그는
앗시리아의 혼란을 기회로 앗시리아의 수비대를 애굽에서 추방시켰으며 페니키아, 시리아, 유다왕국의 피난민을 군에 입대시키면서 군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앗시리아의 에살핫돈왕이
바벨론의 왕으로 책봉한 샤마스-숨-우긴이라는 자가 그의 형
앗술바니팔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앗시리아와 바벨론 간 전쟁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주변의 왕국들이 바벨론에 가담하거나 협조했다. 그러나 바벨론은 함락되고
샤마스-숨-우긴은 자살하고 만다.
이런 와중에서 국제정세는
므낫세왕의 입지를 크게 위협하고 있었는데, 므낫세왕은 앗시리아에게 굴복하는 것이 살 길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 앗시리아 정책을 취하였으며, 므낫세왕은
앗시리아의 봉신으로 행세하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유다왕국을 공격하여 므낫세왕을
바벨론으로 끌고가게 된다. 당시 유다 왕국의 주변 나라들은 동쪽으로는 바벨론에 대항하고, 서쪽으로는 앗시리아에 대항하는 형국이었다. 앗시리아에 대한 반란은 21명의 왕들이 함께 했으며, 그 중 므낫세왕도 가세했는데, 포로가 된 것이다.
므낫세왕은 아버지 히스기야왕의
본을 받지않고, 그의 조부 아하스왕의 본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했다. 산당을
짓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온 땅에 세우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에도 세웠다. 또한 일월성신의 제단을 쌓고 이를 숭배하였으며, 힌놈
골짜기에 몰렉 우상에게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도록 했으며, 점을 치고, 사술을 행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마술사)를 신임하였다. 이사야 57장 3-13절에 보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백성들의 죄악을
그들의 이름을 통하여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이름은 “무당의 자식들” 간음하는 자와 음란한 자의 후손이며, “반역의 자식들”이며, 거짓의 후손들이다. 이 이름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영적인 죄악인 점치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은
영적인 음행이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정욕에 불탄 것은 바로 그들이 가뭄에도 강인하게 살아남은 나무의
힘과 같은 것을 얻고자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또한 이들은 바위 틈에서 자식을 죽여드리는 몰렉 제사를
자행했다. 이것은 종교타락의 극치를 이룬다. 골짜기에서 제사를
했고, 간헐천에서 생긴 기이한 형체에게 제사를 했다. 높은
곳에 있는 것에 가서도 제사를 했다. 문과 문설주 뒤의 기념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도 죄악을 범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예언적 선언을 계속하면서 이스라엘의 죄라는 문제를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길에서
멀리 떠나 방황했으며, 진리와 정의와 의를 위해 일어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전했다. 주님은
백성들을 위해 싸우셔서 그 적들을 패배시키고, 그 분의 구속자를 시온으로 이끌어 오실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들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하나님께로 부터 분리 됨을 알리고 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더 멀리
떠내려갔다. 하나님은 여전히 거기에 계셨고, 관계를 맺기를
원했지만 백성들은 계속 멀리갔다. 하나님은 구원할 힘도 있으셨고, 들을
마음도 있었으나 백성들은 관심이 없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들이
온 몸에 죄가 연루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손과 손가락은 무죄한 피를 흘린 죄의 결과로 더러워졌다. 그들의 입술과 혀는 거짓말과 다른 악한 것들을 말하고, 정의와 정직은
전혀 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했다. 그들의
손은 폭력적인 행위를 계속했고, 그들의 발은 죄악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악한 생각으로 그들의 마음을 더렵혔다. 백성들은 그들의 삶을 죄악으로 가득 채웠다. 결과적으로 정의는 그들로부터 멀어졌고, 그들은 영적 빛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넘어지면서 결코 오지않을 정의를 찾아 신음하면서 영적 어두음속에서 더듬고 있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제
주님의 극적인 개입을 나타낸다. 주님은 전투를 하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으시는데, 갑주는 주님의 흉배이고, 구원의 투구는 그의 머리에 있으며, 열심의 망토는 그를 감싸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시켰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분의 적들에게 부어질 것이다. 그 분의 진노가 섬들에게까지 확대되며, 나라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할 것이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들은 주님을 존경할
것이며, 그 분의 영광을 알게 될 것이다. 구속자가 시온에
와서 야곱 중에서 회개한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은 그 백성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 그 분의 영이 그 자녀들 위에 영원히 머무실 것이고 그들은 그 분의 영이 그들의 자녀들과 손자들 위에 머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모든 세대를 통틀어 주님은 거기 계실 것이다.(이사야59:1-21)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열상21:16) 므낫세왕의 악행은 하나님께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욱 심했다. 송형철에 의하면, 요세푸스는 “므낫세왕은 우상숭배와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과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고 선지자 이사야를 톱으로 켜 죽였다고 한다.(히11:37) 이 같은 므낫세왕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유다왕국에 재앙을 내리시되 마치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예루살렘을 씻어버릴 것을 누차 선지자를 통해 경고했다.(왕하21:13-15)
그러나 므낫세왕은 하나님을 격노하게 한 그 모든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사 하시기를 즐겨하시지 않으셨다.(왕하23:26, 24:3-4) 포로가 된 므낫세왕은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은 므낫세왕의 기도를 들어시고 그를 포로에서 석방하여 왕위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지난 날 잘못된 길을 돌이켜 성전에서 모든 우상과 제단을 철거하여 성 밖으로 던지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만
섬기도록 명했다.(대하33:12-17)
하. 아몬왕 (주전 642-640년)
므낫세왕의 뒤를 이어
아몬왕이 즉위하여 2년간 통치했다. 아몬왕은 회개한 므낫세왕과는
달리 므낫세왕의 초기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력이 궁중에 나타나, 아몬왕을 살해한 것이다. 아몬을 암살한 무리들은 반 앗시리아 정책을
취했던 무리들인데, 백성들이 암살자들을 붙잡아 처형하고, 8세
밖에 되지 않은 요시아를 왕으로 왕위에 앉히게 된다. 아몬왕은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가 우상을 철거시켰는데도 이방 종교를 다시 부활시켰다. 왕국
내에 므낫세왕의 개혁에 불만인 세력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들이 어린 왕을 앞세워 우상을 다시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 요시아왕 (주전 640-609년)
요시아왕은 아몬왕의 아들로서 역시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에
올라 31년간 통치했다. 주변 정세는 앗시리아와 신 바벨론과의
관계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앗시리아에 대해서는 애굽이 지원하고 있었고, 앗시리아에 대항한 바벨론은 메대(메디아)와 동맹관계를
체결했으며, 요시아왕은 반 앗시리아 정책을 취했다. 그래서
애굽의 느고왕이 앗시리아를 도우려고 출정시킨 애굽의 군대를 막기 위해 요시아왕은 군대를 므깃도에 출정시키게 되었다. 애굽왕은 요시아왕에게 회군을 요구한다. 그러나 요시아왕은 애굽의
느고왕의 요구를 무시하고 변장하여 므깃도 골짜기로 내려가 싸웠다. 그런데 여기에서 요시아왕은 전사하고
말았다.
요시아왕은 종교개혁으로
유명하다. 요시아왕에게는 선지자 스바냐가 있었다. 왕과 선지자
스바냐와의 관계는 숙질 관계였는데, 이를 계기로 종교개혁에 착수하게 된다. 요시아왕은 좋은 신앙의 지도자를 만나 18세되는 해부터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뒤에 종교개혁에 착수했다.(대하34:3)
요시아왕은 이방 종교
요소들을 제거하고 예루살렘과 유다를 정결하게 했다. 요시아왕의 이방종교 근절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북
이스라엘의 지역까지 단계적으로 행해졌다.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아세라
목상과 일월성신을 위한 기명들을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갔다.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불살라 그 재를 평민의 묘지에 뿌렸다. 그리고 아하스왕이 지붕에 세운 단과 므낫세왕이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을 헐고 빻아서 기드온 시내에 쏟아버렸다.
열 왕들이 태양을 위해
드린 말들을 제하고, 태양 수레를 불살랐으며, 산당의 제사장들과
해와 달과 열두 궁성과 하늘의 모든 별들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였으며,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미동의 집을 헐었고, 멸망산 우편에 솔로몬왕이 산당을 짓고 아스다롯과 그모스와 밀곰을 위해 세운 석상을
깨뜨리고 대신 사람들의 해골로 그 곳을 채워버렸다. 힌놈 골짜기에서 몰렉에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였고,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제거해버렸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 지역에서도
벧엘에 단과 산당을 헐고 산당을 불사르고 산당의 제사장들의 무덤을 파헤쳐 해골을 취하여 단에 불살랐는데, 여로보암왕
때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한 말이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름없음)은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아라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루리라고 하셨느니라”(왕상13:2)
요시아왕 때 성전 건축을
하던 중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가 연보궤 속에서 모세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왕 앞에서 이
책을 읽어 내려갔는데, 요시아왕이 율법의 내용을 듣자 제사장에게 사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였으며, 이 일은 여선지자 훌다가 맡게된다. 훌다의 대답은 “백성이 여호와를
버린 것과 다른 신에게 분향한 것 때문에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대하 34:24) 여호와의 진노는 그 시대에는 임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요시야왕의 마음이 선했기 때문이었다.
요시아왕은 하나님과 언약의
갱신을 하게된다. 언약의 갱신은 예루살렘에서 거행되었다. 모든
장로들, 제사장들, 백성 남녀노소가 참여했다. 요시아왕은 성전에 모인 백성에게 율법 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줌으로서 언약 갱신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언약을 세우는 것은 언약을 파기했을 때 쪼개어진 동물처럼 쪼갬을 당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언약의 불이행이라는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언약식을 한 후 백성들은 가증한 물건들을 제거하였다.
요시아왕의 권면에 대하여
처음에는 주의를 기울였으나 되돌아 간 사람과 처음부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선지자
스바냐는 모두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고 외친다. 선지자 스바냐가 외치는 심판은 첫째, 이교도들의 관습을 쫒아 행한 방백들과 왕자들에게 선포했다. 이 예언은
예언이 성취될 때의 왕과 왕자들이다. 요시아의 왕자에게는 해당이 없었다. 둘째, 성읍의 동료 백성을 약탈하고 늑탈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지적한다. 셋째, 사악한 행실로 인해 부유해진 정직하지 못한
상인들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넷째, 사악하여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했다.(스바냐1:8-18)
선지자 스바냐는 나라가
영적으로 혼탁하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은 죄악으로 관영된 이 세상을 심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린다. 여호와의 날에 모든 지면에 임하는 우주적인 심판 앞에서 피조물은 잠잠해 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 영적 지도자, 정치지도자, 폭력을
행한 자들, 모든 계층의 백성들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특히 요시아왕 당시에
우상 숭배자들,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밀감을 숭배하는
자들은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우상을 섬긴자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여호와를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 자들은 멸절하실 것이다” 라고 경고하신다. 여호와의
날은 시간적 특징을 말해주고 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스바냐
1:14-16) 여호와의 날은 지역적일 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하나님은 회개를 촉구하고
계셨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기회를 가지는 자들은 그나마 그루터기 같은 남은 자가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 2:3) 이것은 여호와의 날에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 당시 바벨론 왕국에
대해서 메대 왕국이 동맹을 체결하였는데, 동맹군은 3개월
동안 앗시리아의 니느웨 성을 포위하여 점령하게 되었다. 선지자 나훔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강들이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어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같이 슬피 우는도다. 니느웨는
예로 부터 물이 모인 것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나훔2:6-10) 나훔이 이 예언을 하게 된 것은 앗시리아의 산헤립왕의
침략과 관계된다.
앗시리아는 백성들 앞에
무자비한 침략자로 등장하고 하나님은 장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대조적으로 나타낸다. 이 이야기의
근본적인 내용은 산헤립왕의 군대가 그 땅을 휩쓸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것을 유다 왕국 백성에게 가르쳐 줄려고 했다. 선지자 나훔은 침략자 앗시리아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이야기한다. 거만한
앗시리아 군대를 엉클어진 가시 덤불로 묘사했다. 엉킨 덤불은 쉽게 풀리지 않기때문에 한꺼번에 불에 던져진다. 하나님께서 앗시리아의 죄로 인하여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선언하셨으므로, 아무리
방어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선지자 나훔의 말이었다. 이제 니느웨가 심판을 받을 때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가지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두
왕국을 나타낸다. 그리고 영광은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가나안땅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하였음이라”(나훔2:2)
성읍을 방비하는데 있어서
앗시리아왕은 주로 존귀한 자들, 그 땅의 군사 지도자들에 의지한다. 그러나
그들은 절박한 위기에서 두려움 때문에 바삐 나아가다가 넘어져 왕을 실망시켰다. 포위 당했을 때는 성읍의
성벽을 방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지도자들은 달려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이 성읍의 둑은
방어 역할을 하게된다. 이 둑 때문에 포위되어도 안전했지만 백성들은 공포에 떨며 모두 도망해버렸다.
선지자 나훔은 이 성읍이
완전히 황폐해졌다고 보고, 이전의 한창 번양할 때의 거만하던 성읍에게 조롱을 하며 묻는다. “이제 사자의 굴은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나훔2:11) 사자는 지배자들과 백성들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나타낸다. 니느웨를 대적하시는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전차들을 연기 속에서 태우실 것이다.
니느웨 백성들은 자신이 다른 민족들에게 행했던 것처럼 학살당 할 것이다.
선지자 나훔은 니느웨
성이 살인과 유혈로 가득찼기 때문에 치유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니느웨가 심판을 받게되는
원인을 이야기하는데, 니느웨는 잘 생긴 창녀에 비유되어 있다.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많은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나훔3:4)
니느웨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노아몬의 운명으로부터 경건치 못한 자들의 길이 험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노아몬은 테베로서 애굽의 수도였다. 애굽 사람들은 아몬을 주신으로
삼고 있었는데, 아몬은 수양의 머리를 하는 우상이었다. 이
도시의 심판은 예레미야(46:25)와 에스겔(30:14-16)에
의해 심판이 예고된 바 있었다. 노아몬의 사례를 통해서 니느웨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다. 니느웨의 운명은 술 취함처럼 함락될 것을 예고했다. 멸망한 니느웨는 영원히 사라졌다.
니느웨에 대한 모습을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어 있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나홈3:17) 앗시리아의 방백들은 어려울 때를 당하면 마치 메뚜기떼처럼
행동할 것이고 니느웨를 내버려 두고 사라질 것이며, 니느웨는 정말 회복할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니느웨는 이전에도 악한
길로 가고 있었는데, 선지자 요나를 통해서 회개를 하고 심판을 면한 적이 있었다. 니느웨 사람들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물고기 신 다곤을 섬겼다. 요나는
회개시키면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요나3:4)고 외쳤는데, 니느웨 사람들은 온 백성이 하나님을 믿게되었다고
하며, 하나님은 심판을 거두어 들이신다. 40일간의 회개할
시간을 주신 것이다. 니느웨 파멸의 위협은 회개에 따라 좌우됨을 알 수 있게된다. 핵심의 단어가 회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바는 바로 이 회개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신약성경에서
요나의 표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에서 메시야의 죽음과 3일만의 부활이라는 예표를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너. 여호아하스왕 (주전 609년)
여호아하스왕은 백성들에
의해 요시아왕을 대신하여 23세의 나이로 3개월 동안 통치했다. 백성들은 친 바벨론 정책을 하기 위해 요시아왕의 장자를 제쳐두고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다. 애굽의 느고왕이 앗시리아를 돕고, 유프라데스로 돌아오는 길에 여호아하스왕을
폐위시키고 애굽으로 끌고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시아왕의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앉히게 된다.
여호아하스왕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방 종교를 다시 부활시켰다.(렘22:9) 선지자 예레미야는
왕의 악행에 대해서 “이 집이 황폐하리라”(렘22:4-9) 라고
심판을 선언했다.
더. 여호야김왕 (주전 609-597년)
여호야김왕은 12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그는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으며, 애굽과 바벨론을
번갈아 섬기면서 나라를 통치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죄를 범했고,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않았다. 여호야김왕은 불의와 탐욕과 독재에 대해
징벌을 받았다.(렘22:13-17) 그리고 최후에 대해 선포하신다.(렘22:18-19)
예레미야는 미가의 전례를
들어 하나님의 메시지에도 심판이 있음을 밝히는데, 그리고 그 사실에도 이전의 히스기야왕은 미가를 죽이지
않았던 사건을 상기시키게 된다.(렘26:18-19) 그러나
그는 무죄한 선지자 우리야를 죽이기도 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여호야김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우리야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애굽으로 도망하여 갔으며, 여호야김왕이 사람을 보내어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왕에게로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렘26:20-23)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두루마리를 불태우는 행동을 했다.(렘36:22-23) 여호야김왕 4년은 갈그미쉬 전투가 있었던 해였다. 애굽의 느고왕이 바벨론에게
대패했는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서기관 바룩에게 기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여호와의 집에서 낭독하도록 했으며, 또한 1년 뒤 모든 백성들이 금식할 때에 서기관 바룩이 이 말씀을 낭독하게 했는데,
선지자 미가야가 이 말을 듣고 방백들에게 다시 듣게 해주었으므로 이 사실이 왕에게 고해졌다. 여호야김왕은
이 말씀을 듣고도 전혀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두루마리 성경을 태워버렸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다시
말씀을 기록하도록 명령하시는데, 말씀을 버린 여호야김왕의 심판과 최후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첫 번째 말씀에 더하여 서기관 바룩이 기록하였다.
선지자 하박국은 여호야김왕의
통치 기간 불의와 유혈로 가득찬 모습을 보게되며, 자신이 사태를 변화시킬 수 없고, 하나님께서도 변화시키지 않으시므로 이러한 죄악이 계속되는지를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주변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백성을 응징하는데, 바벨론을 하나님의
도구로 쓰신다. 갈대아 사람들이 일어나 유다 왕국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하박국1:6-8)
러. 여호야긴왕 (주전 597년)
여호야긴왕은 3개월 10일 동안 통치했는데, 아버지
여호야김왕을 본받아 악을 행하였다고 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인장 반지는 주로 소유자가 자신의 소유를
증거하기 위해 찍는 것이며, 주인에게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인장소유라 할지라도 버린다는 것을 예언하셨다. (렘52:24-27) 그는 출생하지 않은 땅으로 쫒겨 날 것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왕위를 이을 자식도 없을 것을 예언했다.(렘22:24-30)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어 유다
왕국의 다윗 왕조계로는 마지막 왕이 되었다.
c. 남북 분열시대 선지자들의 활동
⒜ 엘리야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심판을 선포하셨다. 엘리야의 첫 번째 행동은 기근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곧 가뭄이 찾아왔다. 하나님이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엘리야를 가게하고, 그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음식을 엘리야에게
주게했는데, 엘리야가 사르밧의 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데, 엘리야는 과부에게 그릇에 물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과부가 물을
가지러 갈 때에 떡 한조각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과부는 “오직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 아들과 함께 요리해서 이를 먹고 죽으리라” 라고 말했는데, 그랬더니 엘리야가 자기에게
떡 한 개를 만들어 주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해 만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비가 올때까지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부는 엘리야가 말한대로 했더니 과부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후에 과부의 집에 아들이 병들어 죽었는데, 엘리야에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아이를 데리고 갔느냐고 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아이의 혼이 돌아와 살아났다. 과부의 이야기는 예수님 당시의 물고기 다섯 마리와 보리떡 2개로 5000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연상하게 된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 후 가뭄이 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엘리야와 아합왕이 함께 갈멜산으로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 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내려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열상18:41-46) 이
내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아무리 위대하여도 하나님에 비견할 수
없는 것을 보여준다. 구름을 만드는 과정, 일곱번 바다를
바라보는 과정, 마차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글을 통해서 바알은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천지를 움직이는 자연 현상에 초월하시며, 모든 인간의
문명을 뛰어넘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12 겨릿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12 겨릿
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 곳으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를 내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 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들었더라”(열상19:19-21)
이는 예수님 당시의 12제자들의 부르심과 부자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영적인 싸움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아람 왕국과의 전쟁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엘리야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전쟁으로 비유되어 설명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람 왕국과의 2차 전쟁 후 한 선지자의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
싫어하는지라 선지자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선지자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 지라,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가운데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하리라 하였거늘”(열상20:35-40) 이 이야기에서 첫 번 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를 하지 않아 영적 죽은 사람이 되었고, 다음 사람은 회개하였으나 하나님이 큰 고통 속에서 회개하도록 하였으며, 큰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회개하고 그의 영혼을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건으로 변장하듯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 엘리사
엘리야는 하나님이 직접
하늘로 데려가셨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시고자 할 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하니
엘리사는 기어이 따라 가겠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벧엘로 같이 내려갔는데, 그 곳에서 엘리야는 다시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여리고로 보내시겠다고 했는데, 엘리사가 다시 가겠다고 해서 여리고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엘리야가
이번에는 하나님이 요단으로 나를 보내시려고 하니 여기 머물러라고 했는데, 또 다시 같이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단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 곳에서 엘리야는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을 건너갔는데, 그 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구할 것을 말하라고 하니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하는지라
엘리야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 후 갑자기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갔던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고, 엘리사도 건너갔다고 한다.
그리고 엘리사도 처음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어떤 성읍에 토지가 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니, 소금을 가져오라고 해서 뿌리면서“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음지니라”라고
했다.(열하2:1-22)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아이들 42명을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그들을 죽여버렸다.
이 내용을 보면 3가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첫째,
엘리야와 엘리사가 함께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데려가기 위해 회오리 바람을 준비하고, 둘이 함께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갔으며, 엘리야가 겉옷을 치니 물이 갈라졌고, 엘리야가 성령을
구하는 장면이다. 둘째, 그들을 갈라놓는 장면인데, 불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셋째, 엘리사가 혼자서 활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엘리사도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고, 어떤 성읍의 토지에 소금을 뿌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하는 아이들 42명을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죽였던 장면들이다. 위의
내용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침입으로 고향을 떠나 어려운 생활을
할 때 희망을 갖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메시야 예수님 당시의 활동과도 너무 비슷하다. 예수님은
공 생애 기간 제자들과 여러 곳에서 다녔으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으며, 부활한 후 하늘에 올라가셨고,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많은 기적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지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빛과 소금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으라는 소리로 들리며, 42명의 아이들은
악한 영들로서 두 마리의 암곰, 즉 예수님과 성령의 힘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상징적 예표를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왜 여호람왕때 이같은 메시야 적 의미를 담은 이야기가 나타났을까? 아마도 이 글을 쓴 작가가
시대적 배경(이 작가는 예레미야로 추정됨)이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상황을 연결시킨 것 같다. 마이켈슨에 의하면, 성경의
한 구절을 해석하는 사람은 누구나 과거시대로부터 주어진 문헌을 검토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재시간 속에 위치해 있다.
해석자는 각 진술이 원래의 선포자나 기록자에게 그리고 그들 당대의 시간 속에서 원래의 청중이나 독자들에게 의미했던 바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 메시지를 그의 동 시대인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
진술들이 과거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알아야 하지만 또한 그것들의 의미가 해석자 자신에게 그리고 해석자가 이 개념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영적인 타락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메시야 적 말씀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모압과의 전쟁
후에 선지자 엘리사와 과부의 기름 그릇에 대한 이야기와 수넴 여인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선지자의
제자 중 한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과부된 아내가 엘리사에게 호소를 한다.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자기 아들 둘을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사는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데,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없다고 한다. 엘리사는 모든 이웃에게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했는데, 그릇에 기름을
붓도록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 모든 그릇에 기름이 가득 찬 것이다. 그래서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았다는 이야기이다.(열하4:1-7) 알레고리적(풍자적)으로
해석해 보면 이 이야기에서 빚을 준 사람은 세상이며, 빚진 자는 이스라엘 백성이고, 빚을 갚아준 자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며, 그릇은 모든 이웃의 영혼을 의미한다. 모압과의 전쟁에서 모압왕은
아들을 번제로 하는 악행을 한 바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같은 영적 타락에 빠지지 말고
모두 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넴 여자와의
관계에서 어느 날 엘리사가 수넴 여자라는 집을 지나가는데, 수넴 여자가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도 기특해서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구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니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함”이라고 하는데, 엘리사의 사환이 그녀에게 아들이 없다고
귀띰하면서 남편이 늙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는데, 그 여인은 그 말을 믿지않았지만 결국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되었다. 그런데
추수하는 어느 날 아이가 엄마의 무릎에 있다가 갑자기 죽게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인은 사환과 더불어
나귀를 타고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으로 가게되었다. 엘리사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에게
허리를 묶고,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고, 누가 인사해도 대꾸하지
말고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기어이 엘리사를 모셔가려고 하여 할 수
없이 그녀와 함께 죽은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되는데, 사환인 게하시가 먼저 달려가서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대어보니 살아나지 못했다. 그래서 엘리사가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입을 입으로 대고, 눈은 눈을 맞추고, 손에 손을 잡으니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7번 재채기 한 후에 눈을 떴다는 내용이다.(열하4:8-37)
이 이야기에서 수넴 여인은
선택된 백성을 의미하며, 수넴 여인의 기도는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일 것이다. 추수하는 날은 언젠가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하며, 제자가
지팡이를 아이에게 두었는데, 살아나지 못한 것은 영적 무장이 안된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입과 입, 눈과 눈, 손과
손은 모든 살리는 영에 대해서는 상황에 맞게 해야 하며, 일률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7번의 재채기는 오랫동안의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한 사람의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수넴 여인과 엘리사가
대화하는 장면이 또 나온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보고 7년간
가뭄이 있을 것이니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살다가 오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엘리사의 말대로 블레셋 땅에서 7년을 살다가 돌아와서 왕에게 땅을 돌려주도록 호소한다. 왕은 자초지종을
듣고 관리를 임명하여 모든 것을 주게되는 이야기이다.(열하8:1-6)
믿음의 여인에게도 고난이
찾아오게 된다. 그러나 고난 뒤에는 중보기도의 주님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내용이다.
선지자 엘리사가 이름없는
수넴 여자와의 이야기에 대해서, 박혜경에 의하면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은 때에 곡식을 베는 자에게
나간 후”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곡식을 벤다는 것은 건조한 때이고, 건조한
식물과 연관된 모트 신을 연상시킨다. 모트 신은 죽음의 신으로 생명의 신 바알과 대조를 이루는데, 아들의 곡식 베는 곳으로의 행보는 가나안 신들에 의한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으나, 아들이 살아났음으로 하나님의 승리로 끝난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열왕기하 8장에서 수넴 여인이 다시 등장하는데,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기근으로 인해서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 있다가 오라고 했는데, 그 여인은 블레셋 땅에서 7년을 거주하다가 돌아왔다. 블레셋 땅은 위협적이었고, 오므리 왕조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새
왕조가 시작할 때에 블레셋과 많은 연관을 가지는데, 우가릿 시에는 여신, 아낫은 7년간 바알의 기근을 노래하고 있다. 종교적인 배경들이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에 존재하며, 이 여인은 자신의
땅을 돌려 받음으로서 생명을 돌려받고, 왕은 정의를 이루는데, 이
내용은 이스라엘의 터전을 놓고 양식비평 방법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쇠 도끼의
이야기가 있다. 엘리사와 제자들이 나누는 이야기인데,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 좁아서 요단에 가서 새로운 집을 짓자는 것이다. 요단에서 나무를 벨 때 쇠 도끼가 물에
떨어져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간구하는데,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니 쇠 도끼가 떠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왕하6:1-7) 이 이야기의 의미는 천국 집을
예비하기 위한 것으로, 쇠 도끼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 도구로서 자신의 몸이나 재물을 드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나뭇가지는 하나님이 결국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쇠 도끼를 찾아주듯 모든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c) 아모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심각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고,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고”라고 하는데, 이는 공의를 행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들이 공의를 행하지 않고, 무지한 자를 불의하게 넘긴 사회적인
부정과 불의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죄악도 심했다. 술을
마시고 성소를 더렵혔으며, 교회에서 엄청나게 타락했다. 또
“전당잡은 옷 위에 누웠다”라는 것은 가난한 자의 재산이 겉옷까지 취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지자 아모스는 4가지의 예언으로 말하고 있다. 첫 번째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결과는 심판을 초래한다. 즉, 아무리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심판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두번 째는 끊임없는 죄악 때문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치한 여인의
죄악과 잘못된 예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선지자 아모스는 바산의 암소라는 말을 통해서 여자들이
남편으로 하여금 가난한자들을 학대하도록 요청하는 자라는 것을 말한다. 즉, 사치와 형식적인 예배로 심판을 받게된다는 것이다. 세번 째, 가난한 자를 착취하며, 억울하게 하는 불법과 불의한 행동들을 하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다. 네 번 째, 마음이 든든한 자와 안일한
자에 대한 경고로서 “상아 침대에 누우며, 자기 침상에서 기지개 펴고,
양떼 중 어린 양만 잡아먹고, 우리에서 송아지만 잡아먹는다. 너희는 비파에 맞추어 흥얼거리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이다.” 결국 이들은 최후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하나님은 선지자 아모스에게
다섯 가지의 환상을 통해서 회복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첫 번째 메뚜기의 환상으로서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켰으므로”(아모스7:1-3) 선지자의 간절한 간구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키신다.
두번 째 불의 환상인데
하나님이 불로 징벌하려고 하는데 선지자의 간구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키신다.
세번 째는 다림줄 환상인데, 선지자의 간구가 없이 심판만 선포하시는데 결국 심판이 이루어진다. 곳곳에
있었던 산당과 베델과 단에 있었던 성소를 파괴하며, 여로보암의 왕국(여로보암Ⅱ세)을 멸망시킨 것이다.
네번 째는 여름 과일과
한 광주리의 환상인데 하나님은 선지자 아모스에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환상으로 보여주면서 하나님은 그가 보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아모스에게 물었다. 아모스는 “여름 실과 한 광주리이니이다”라고 대답했는데, 그 다음에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 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암8:1-12) 이것은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여름이 끝날
무렵에 실과로 가득차 있는 한 광주리는 먹음으로서 소비되거나, 또는 먹지않는다면 썩음으로서 소비될 것이다. 실과 한 광주리가 쉽게 그 끝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들에게 지시한 끝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죄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암8:3)
하나님께서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가난한 자를 삼키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형식적인 예배를 하며, 재판관이 뇌물을 받고 하는 자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도
없고, 들을려고도 하지 않는 이러한 시대의 비 정의적 사람들에게 반드시 심판하리라고 하셨다.
다섯번 째는 제단위에
서 있는 사람의 환상인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며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한다”(아모스9:1) 그리고 바로 심판의 말이 이어진다. 이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d) 호세아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늘 무시하였다. 그들의 죄악은 저주, 거짓말, 살인, 도적질, 간음, 우상숭배 등이었으며, 제사장들은 타락하였고, 이교도적 예배를 자행했다. 이교도들의 예배는 하나님에게는 간음과
음란 행위로 비유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며,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심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왕을
잃고, 땅을 빼앗기고, 사마리아가 공격당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표현으로서 해산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심판 때 태를 열고 나오지도 못하고 죽게 된다. 이것은 전혀 소망이
없다는 표현이다.
(e)이사야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백성들에게 주의 날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주의 날”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데, 안믿는 자들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백성을 깨끗게 함,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함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로부터 모든
인간 지도자들을 제거하시겠다고 맹세하셨다.(이사야3:1-7) 그
분은 음식과 물과 다른 물자들을 끊어실 것이다. 모든 지도자들, 군사적, 정치적, 영적, 사회적
지도자들을 제거하실 것이다. 부동산이 너무 많아 다른 사람이 아무도 그들 가까이 살 수 없게 한 자들, 주흥을 쫒는 자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 그들은 죄악을 끌고가면서 동시에 그들의 매일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드러내 달라고 요청하는 자들을 말한다. 도덕적으로 왜곡된 자들은 그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들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만들었다. 그들을 선지자 이사야는 선을 악으로, 빛을
어두움으로, 단 것을 쓴 것으로 바꾸는 자들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자고한 자들에게
화를 선포했다. 자고한 자는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그리고 부도덕한 이기주의자들, 악인을 사면하고 무죄한 자에게 공의를 시행치 않는 자들을
말하는데, 관심은 옳은데 있지 않고, 이익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는 자들, 그들은 기회를 악한 행위의 기회로 보며, 그들이
벌받지 않고, 나쁜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위에서
결정을 내린다.
선지자 이사야는 시온의
여인들 사이에 있었던 죄악 된 경향을 강조했다. 남자들로부터 주목을 끄는 옷을 입고 다녔고, 그들은 구애자들의 주목을 얻기 위해 늘인 목정을 통하여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곤 했다. 그들은 외적인
장식과 아름다움을 강조했는데, 그래서 하나님은 다 가져갈 것이다. 그들의
부드러운 피부와 휘날리는 머릿결, 많은 장신구와 악세사리들을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보복에 관한 강력한 묘사로 끝맺는다. 그루터기나
마른 풀은 불꽃 속에서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을 거역했던 자들은 그분의 심판 아래에서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나. 종교개혁
남 유다왕국 아사왕 때
종교개혁은 두 차례 있었는데, 1차 개혁은 백성들이 섬기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찍고 태양 모양의 표식을 없앴으며, 또한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지켜 행하게 하였다.(대하14:2-5)
2차 개혁에 대해서 살펴보면 오뎃의 아들 선지자 아사랴는 세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사왕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를 했다. “이르되 아사와 유다, 베냐민의 무리들아 들어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를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15:2) 아사왕은 이 말을 듣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심을 깨달았다. 그리고 2차 개혁을 착수하는데, 남색하는
자를 쫒아내고,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여호와의
낭실 앞 단을 중수하였다. 아사왕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를 언약하고”(대하15:12) 언약의
갱신의 증거로 여호와를 부르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선포하였다.(대하15:14)
여호사밧왕은 아버지 아사왕의
대를 이어 종교개혁에 착수했는데, 남색하는 자를 색출하여 쫒아내었고,
아세라 목상을 유다에서 제거하는 일을 시작했다.(왕상22:46,
대상17:6) 그리고 그의 방백 5명과 레위사람 9명, 제사장 2명에게
“여호와의 율법 책”을 가지고 평민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다.(대하17:7-9)
히스기야왕의 종교정책은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중단된
성전의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고, 둘째, 유월절을 회복하는
것이었으며, 셋째, 전국적으로 이방 종교와 산당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넷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직분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성결하는 것을 시작으로 성전의 성결, 성전의 재 봉헌, 백성들이
참여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위의 행사 중 성전의 성결은 언약의 갱신으로 묘사한다. 언약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의 시대에서 볼 수 있듯이 “자르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만약 어겼을 때는 쪼개진 송아지처럼 쪼개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렘29:10) 성전에서 히스기야왕은 언약 의식을 통해 아하스왕의 악행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단을
표하고 있다. 히스기야왕은 아하스왕 때 중단된 제사를 드렸다. 제사는
번제와 속죄제로 드렸다. 번제는 제물의 전체를 불살라 드리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속죄제는 희생 제사를 뜻한다.
유월절의 회복은 북 이스라엘에게도
서신을 보내 예루살렘에서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로 권유했다. 그리고 이방 종교와 산당을 타파하는 것에
대해서 가나안화 된 민간 종교의 중심지인 지방의 산당을 타파하는 것이었는데, 아세라 목상을 깨고, 모세가 만든 놋 뱀을 부수어 느후스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로 하여금 제사의 직분과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도록 하였고, 백성들에게는 십일조를 가져와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부양하도록 했다.
요시아왕은 하나님과 언약의
갱신을 하게 된다. 언약의 갱신은 예루살렘에서 거행되었다. 모든
장로들, 제사장들, 백성 남녀노소가 참여했다. 요시아왕은 성전에 모인 백성에게 율법 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줌으로서 언약 갱신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언약을 세우는 것은 언약을 파기했을 때 쪼개어진 동물처럼 쪼갬을 당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언약의 불이행이라는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언약식을 한 후 백성들은 가증한 물건들을 제거하였다.
다.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하심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간
신에 대한 대결이 있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세운 제단에 태우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면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잡아 죽여버렸다. 그런데 엘리야는 갈멜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에
쫒겨서 호렙산으로 쫒겨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의 4 가지
죄목을 하나님께 알렸는데, 하나님은 심판을 예고하시게 된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알린 죄목은 첫째, 주의 언약을 버렸고, 둘째, 주의 단을 헐었으며, 셋째,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넷째, 저들이 자신의 생명을 취하려
했다는 것이다.(왕상19:9-10)
엘리야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는데, 천사가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이 있어 먹어라고 해서 먹게된다. 그런데 천사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먹어라고 하며,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라고 했다. 천사는 왜 나타났으며, 숯불에
구운 떡은 무엇인가? 아마 이것은 새로운 시작(새로운 선지자)을 알리는 것임에 틀림없다. 새로운 시작은 과거와의 청산이다. 과거의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위의 내용에 대해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율법에 보면 부정한 사람은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에서 보듯이, 이사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있음을 깨달았을 때 “부정한 입술”을 가진 그는 죽게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정결해야 했는데,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부정한
백성 중에서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때 그 스랍(천사)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이사야6:5-7) 스랍은 천사의 한 종류인데, 숯은 상징적으로 부정한 것을
새롭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엘리야는 천사가 먹으라고 한 숯불의 떡을 먹음으로서 과거의 잘못된
것에 대해 하나님은 새롭게 시작하시겠다는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가뭄 중에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주신 음식은 까마귀와 과부로 부터 였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벗어나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만들어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하도록 했는데, 제사는 레위 자손만이 이를 담당하게했다. 그리고 제사장은 거룩하게 구별해야 했고, 제물도 정한동물 만을 바치도록
했으며, 백성들도 정한 동물 만을 먹도록 했다. 까마귀는
부정한 동물이다.
또한 과부에 대해서는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 즉, 자신을 더렵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레21:14) 라고 하면서 과부를 아내로 취하지 말라고 하셨다. 결국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시 세금
징수자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그들의 죄를 사해주셨다.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음으로서 진정한 부정,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사하시는 권능이 있지만 우상을 섬기는 악행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으며, 심판을 하시겠다는 모습을 나타내시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 메시야
도래의 예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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