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아
3. 노아
(1)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아담의 계보에서 나타난 심판)
첫사람으로 부터 대홍수까지는 약 1600여년의 기간이 있었다. 아담의 계보로는 10대(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가 지나갔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 속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셋(임명되다), 에노스(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게난(슬픔), 마할랄렐(복된 하나님), 야렛(내려 올 것이다), 에녹(가르치는), 므두셀라(죽음이 가져온다), 라멕(한탄하는 자), 노아(안위하시다) 이들 중에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는데,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365세를 살았다고 말한다. 365라는 말은 1년 365일을 생각하게 하지만, 에녹은 전 생애를 걸쳐서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을 사는 사람들은 바로 에녹과 같은 삶이었다고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므두셀라는 창을 던지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자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이미 던져졌다는 것이다. 에녹이 자기 아들을 므두셀라로 지었다는 것은 므두셀라가 죽는 날(969세)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에녹에게 나타나심은 마치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약 1600년 동안 인구의 수)
이 기간 동안의 인구수는 정확히 성경에 기록한바 없으나, 대략 10-100억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의 인간의 수명은 800 - 1000년 정도로 장수하였다. 생산할 수 있는 연령의 한 세대와 사망률, 평균 여아 출생률 등을 고려해보면 이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가 있을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홍수로 8명을 제외하고 이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을 물로 수장시켜 버린 사건이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첫째, 네피림이 있었으며, 둘째,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며, 셋째,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다는 것이다.
(네피림)
“네팔”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네팔의 의미는 떨어지다, 넘어지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사야 14장 12절에서『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여기에서『떨어졌다』는 말이 바로 『네팔(떨어지다)』과 같은 의미의 단어다. 네팔이 네필(네피림)로 파생했으며,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허물(죄)은 파라피토(곁으로 떨어지다)라는 단어에서 파라토마(떨어지다)라는 단어로 파생되었는데, 즉 죄는 떨어지다 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6장 6절에서는『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여기에서 『타락한(파라피토)』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떨어지다 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타락한 자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떨어진 자는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얻은 자가 아니라, 자기가 믿는 믿음에 불과한 자가 된다. 네피림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이 되므로 스스로 강한 자(용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네피림을 용사로 번역하여 거인(히간테:기간테스:자이언트)이라든가 난폭한 자라고 번역된 것은 오류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해서 성경학자들은 두가지의 경우로 해석을 하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사람 셋의 후손이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이라고 하기도 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은 타락한 천사이고 사람의 딸은 이 세상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쫒겨온 범죄한 천사들의 영이 흙과 결합된 존재들이다. 천사는 사람과 결혼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또한 셋의 후손들도 죄악에 살고 있던 자들이 있었으므로 셋의 후손 모두를 경건한 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가지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범죄한 천사의 영이고, 사람의 딸들은 대대로 전해주는 죄의 몸인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범죄한 영이 육체에 들어가므로 인간이 된 존재,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세상에서 용감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장차 오실 약속의 씨를 바라보는 자들은 다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약속의 씨가 없는 자들은 여전히 사람의 딸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범죄한 천사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씨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자, 사람의 딸들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죄의 몸을 상징하며, 약속의 씨가 없으므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자 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이 당시 상황으로는 약속의 씨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약속의 씨가 없는 타락한 자들과 결혼하므로 온 세상의 사람들이 약속을 버린, 타락한 존재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약속의 씨, 유무를 통해서 남녀로 구분하여 표현되었을 것이다.
(2) 120년간 노아의 외침
노아는 120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회개할 것을 외쳤다. 그러나 처와 세아들과 며느리 외에는 아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노아에게는 많은 자식들과 며느리들, 친척들이 있었을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노아가 회개할 것을 촉구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창세기 6장 5절)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당시의 사회 상황을 통해서 죄악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으련만 성경에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그런데, 참고될만한 자료가 『야살의 책』이다. 성경은 여호수아(10장 13절)나 사무엘하 1장 18절에서 야살의 책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야살의 책을 통하여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가 만연했으며, 성적인 타락에 따라 피임약을 개발하여 여자들이 임신하지 못하도록 하고, 살인, 여자 납치, 동물 이종간 교배들의 악행을 저질렀다. 하나님은 이들의 악행에 분노하여 홍수로 멸절시키려고 하셨다는 내용이다.
(3) 대홍수
창세기 7장 11-12절에 의하면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그로 인해 물이 150일간 창일했고,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물이 점점 감해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 다시 40일을 지나 (11월 10일경)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놓았고 까마귀는 물이 마르기까지 지면을 왕래했다. 노아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첫 비둘기는 온 지면에 물이 있어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노아에게로 돌아왔다. 두 번째 비둘기는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와 노아가 물이 감한 줄 알게 됐다. 세 번째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머무를 곳이 생긴 것이다.
노아가 601세 되던 해 1월 1일 방주 뚜껑을 열고 보니 지면에 물이 걷혔다. 그해 2월 27일에 땅이 마른 것을 보고 하나님의 명에 따라 드디어 방주에서 나온다. 홍수가 시작된 지 무려 1년 10일 만에 방주에서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노아의 가족 8명과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을 제외하고, 사람들을 포함한 방주 밖의 모든 동물들은 다 죽었던 것이다.
(4) 방주를 만들다
창세기 6장 14절에서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역청과 관계되는 단어가 있는 부분을 찾아보면 창세기 19장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서『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창세기의 말씀들은 불과 유황으로 표현되어 있다.
방주는 네모난 상자모형의 배다. 방주를 영어로 표현할 때, Ark라고 한다. 이Ark가 쓰여진 단어들이 모세의 갈대상자와 노아의 방주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이다. 그런데 방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방주는 고페르나무(잣나무:백향목)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 백향목은 히브리어로 고페르, 에레츠, 코페르라는 단어로 사용되어 있고, 번역본은 잣나무, 삼나무, 백향목 등으로 표현되었다. 백향목은 성전, 언약궤에도 사용되었다.『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역청은 백향목(고페르) 나무의 진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백향목 나무의 진(고피르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역청은 몸값 속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백향목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역청은 속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한다.『칠하라』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진정시키다, 화해하다, 속죄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창세기 19장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여기서 유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고피르트』(백향목 나무의 진)이다. 백향목 나무의 진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으로 흘리는 피를 나타낸다. 그 피와 불이 하늘에서 비같이 내렸다는 것이다. 불은 성령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천지(물질세계)를 만드실 때 물(말씀)과 성령으로 만드셨다. 베드로후서 3장 7절에서『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하늘과 땅을 불사르기 위하여는 창조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즉 창조는 물(말씀)과 성령으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물질세계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에 의해 다시 없어진다는 것이다.
(5) 대홍수 사건의 영적인 의
노아의 홍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 노아의 방주에는 노아와 그의 일곱명의 식구들, 그리고 동물들이 들어갔다. 홍수는 죄, 죽음, 심판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세상에 가두셨으나, 그들에게 여인의 후손인 씨의 약속을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약속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차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려고 하나님을 반역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의 씨를 붙잡고 있던 노아와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와인나헴) 마음에 근심하시고』와인나헴(기본형은 나함)은 한탄하다 라는 의미 외에 위로하다 라는 의미도 있다. 후회와 위로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은 범죄한 영들을 흙속에 가둔 것이 참으로 후회스럽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하는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징계를 했지만 위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들에게 죄의 몸을 주어 육체 속에 가두었지만, 하나님이 다시 영들에게 의의 몸을 주어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키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곧 새창조를 의미하며,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그 작업이 곧 홍수라는 것이다. 홍수는 심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홍수의 결과 방주에서 구원받는 자들이라는 의미도 된다. 모든 인간은 홍수로 죽어야 하지만, 방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육의 몸은 죽도록 하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은혜를 베푸신다.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하나님이 창조한 사람과 동물들은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떠난 혼적인 존재(살아있는 생명체)로 비유된다. 사람은 종교심이 있어서 신을 찾는 마음이 있지만, 동물들은 그러하지 못하다. 사람일지라도 비록 종교심이 있지만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며, 종교심이 없는 동물로 표현된 자들도 역시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원인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었기에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흙속에 가두어 한시적인 생명체를 만든 것을 후회하시고 한탄한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감옥에 가두었다면, 참으로 후회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이를 다시 새창조로 이어가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신다는 말이 된다. 여호와(하야 아세르 하야) 이신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오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호세아 2장 18-20절에서『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내가 짐승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전혀 하나님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한 존재를 하나님이 은혜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출발점은 하나님이시며,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믿음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약속을 언약을 통해 해 주셨다. 계시를 통해 듣고 발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아(네피림 같은)가 멸해지고 심령 속에 호 로고스만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와 같이 새창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죽었던 영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열정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홍수에서 죽어야 함을 깨닫는 자만 새창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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