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브라함

 5. 아브라함

 

(1)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에 있었던 시절 정치적 상황

갈대아 우르는 바벨론을 의미한다우르 나무는 바벨론 우르 제3왕조를 창건하고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그는 난나(월신)를 숭배하고 난나 지구라드 신전을 세우고 신성한 지역이라고 구별했다신전은 발굴 결과 길이 60     m,  16m, 높이 26m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그 당시는 천문학이 발달했다상행위를 위한 저울과 측정용기수학도 발달했다. 1년을 12개월로 정했으며달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매 3년마다 1개월을 첨가하여 비교적 정확한 달력을 만들었다우르 제3왕조가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으나 우르왕조 마지막 이비신 왕때 BC2000년 경 후반에 엘람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으며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아모리 족속들이 엘람을 축출하고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수메르가 멸망을 당하게되자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고 권력을 휘두르던 지배층이 붕괴되어 민중들은 생업을 찾아서 안전한 곳을 찾아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갔다아브람은 이런 와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갖는다원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아브람이었다그런데나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신 것이다.

 

(2) 아브라함의 두 언약 사이의 믿음

(반쪽 믿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75세 때의 일이다그래서『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12:1) 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브람은 고향을 떠났지만친척인 롯을 데리고 나왔다아브람은 고향을 나왔지만 친척을 데리고 나오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2)라는 말씀에 아브람은 그의 상속자가 고향 사람 엘리에셀로 생각했다.

 

하나님은『네 몸에서 난 자가 상속자라』고 말씀하시니까그는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는다그리고 99세에 다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내년에 자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는데도 속으로 웃었던 것이다이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다.

 

(3) 횃불언약

하나님은 아브람에게『네 몸에서 난 자녀가 상속자가 되라라』를 언급하시고 15 6절에서는『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을 맺는다이게 횃불언약이라고 말한다제물인 동물을 쪼개어 두었는데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들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이었다제물의 죽음이 언약이다이 언약을 반쪽일방적 언약이라고도 한다그 이유가 16장에서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했지만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했기 때문이다.『자녀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만자기들 방식으로 믿는 것이다오늘날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가 제물이 되어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그런데 대부분 자기들 방식으로 믿는다는 것이다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 되지 않는 것이다부르심을 받았지만 택하심을 얻지 못하는 믿음이다.

 

(4) 할례

창세기 17 1-2절에서『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두번째 언약이다첫번째 언약은 아브람이 참여하지 않은 반쪽 언약이다이번에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참여하라고 하셨다그런 후에 17 5절에서『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주신다그리고 17 7절에서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할례를 명하셨다할례가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이다할례는 약속의 자녀라는 의미와 함께 육의 죽음을 의미한다이것이 신약에서는 세례라는 것이다세례는 죽음을 나타낸다.

 

(5) 첫번째 언약과 둘째 언약 사이

첫언약과 두번째 언약 사이에는 육적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구약에서의 할례와 신약에서의 세례다. 17 13-14절에서『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아브라함은 자녀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속으로 웃었다아브라함은 『내년에 백세가 되는데자식을 주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것이다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한다왜냐하면 모든 생각의 바탕이 육에서 나오는 것을 근거로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다아무리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셔도인간은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그게 자아라는 것이다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아가 우선되는 인간은 모두가 진노의 자식이 된다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다이것이 회개와 연관된다회개는 육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기에 앞서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적용시켜버린다이게 육신이고그물이라는 율법에 갇혀있는 존재라는 것이다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아가 죽지 않으면 모두가 첫언약에서 두번째 언약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자가 된다부르심을 입었지만 택하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6)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창세기 18장에서는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에 대한 언약(할례)을 하신 후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천사들과 아브라함의 장막에 오신다그리고 사라와의 대화를 마친 후에 소돔과 고모라로 가시고 19장에서는 심판을 하신다.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차이가 있다. 노아의 홍수는 물세례와 같은 의미다. 물에 빠져 다 죽은 자라는 것이다. 죽은 자는 옛사람이다. 노아와 그 가족도 옛사람이 다 죽고, 새사람이 방주에 들어가 새생명으로 이 땅에 등장한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으로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옛사람이 불에 다 타죽고, 롯과 그의 가족도 죽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새사람이 된 것을 말해준다. 이는 모두 오늘날 성도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7) 소돔성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다

(창세기 19 9-17)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롯이 지체했다. 심판이 연기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심판의 지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4 22절에서『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나님은 롯과 그의 가족을 피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거소돔성은 하늘에서 불비를 내려 황폐하게 했다소돔의 멸망은 종말 때의 심판과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24 5-8절에서『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의 피괴,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성도의 옛사람이 파괴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8)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천사들이 롯과 아내와 두 딸들을 성 밖으로 끄집어내어 준다. 그리고 천사들이 들에 머물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했다. 마태복음 24 16-18절에서『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뒤를 돌아본 사람은 롯의 아내였다.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백성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애굽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하고 말았다. 뒤를 돌아본 이스라엘과 롯의 아내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뒤돌아보는 것은 복음에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같은 의미다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복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율법에 사로 잡혀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보게된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했는데, 그들이 율법을 다시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하나가 되는 사람들은 율법과 세상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99세에서 100세가 되는 그 중간에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부르심의 언약과 택하심의 언약 사이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해야만 한다.

 

(9)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

로마서 4 18-22절『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자식이 바로 이삭이다이삭은 그리스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10) 이삭을 바치는 믿음

(창세기 22 1-5)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했다. 이 시험은 어떤 것인가?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속 마음을 끄집어 내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도 시험을 하셨다. 이스라엘에게 시험하신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했으므로, 그것에 대한 시험이지만, 아브라함은 완전한 의가 무엇인가를 나타내려는 시험인 것이다. 즉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즉 사탄이 미혹하는 시험(히브리어:타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11) 이삭은 그리스도의 예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다. 창세기 15 6절에서『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모든 탕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의 안에 거하는 자들은 모든 세상죄에서 해방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믿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던 그 때 자식을 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수백년을 살았지만, 아이를 갖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믿었다.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모리야 산으로 가서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도, 하나님이 아들을 다시 부활시켜주실 것을 믿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상태를 모든 인간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이삭은 독자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독자(야히드)인가? 야히드는 야하드(하나)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하나에서 나온 유일한 것이라는 의미다. 아담에게서 하나님이 다른 한편을 끄집어내었다. 본래 하나였는데, 다른 하나를 끄집어 낸 것이다. 하나님이 원래 하나인데, 독생하신 그리스도를 낸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로서 이삭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삭에 대한 독생자의 표현은 그리스도의 예표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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